복지부 前 부하직원 법정 증언
“메르스로 사퇴 후 국민연금 行
삼성합병 보상 차원일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장관보다 훨씬 좋은 자리라고 현직 장관이 말하는 걸 듣고, 공무원으로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2015년 ‘삼성 합병’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찬성 의결 압박을 받았던 보건복지부 전직 고위간부가 법정에서 상사였던 문형표(61ㆍ구속기소) 전 장관을 향해 쓴소리를 뱉었다. 문 전 장관이 매일 청와대 수석 지시를 받아 업무를 결정해 부처 내에선 “누가 장관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고, 장관 신분임에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가고 싶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당시 복지부 연금정책을 총괄했던 이모 전 실장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 심리로 열린 문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전 실장은 ‘삼성 합병’ 찬성 결정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퇴직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은 “문 전 장관에게 ‘저는 이만 갑니다, 열심히 해 주시길 바란다’고 인사를 드리자 문 전 장관이 ‘나도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이 전 실장은 문 전 장관이 ‘이사장이 장관보다 훨씬 더 좋은 자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그는 “28년을 공무원으로 일한 입장에선 충격을 받았다”며 “제가 모셨던 장관 자리가 산하기관장보다 못한 자리였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말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문 전 장관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본인이 희망하던 자리로 간 건 삼성합병 건을 성사시킨 보상 차원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랬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날 특검에 따르면 문 전 장관은 청와대 지시를 받고 이 전 실장에게 “삼성물산 합병 건을 (찬성 설득이 어려운 외부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투자위원회 의결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문 전 장관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움직인 탓에 당시 복지부 내부에선 ‘장관이 업무를 안종범 수석에게 물어 결정한다’ ‘누가 장관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전 실장도 “그런 말이 돌았다”고 인정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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