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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잭 드레이퍼스 (3.27)

입력
2018.03.2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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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풍운아 잭 드레이퍼스가 2009년 오늘 별세했다. remarkablemedicine.com
월스트리트의 풍운아 잭 드레이퍼스가 2009년 오늘 별세했다. remarkablemedicine.com

월 스트리트에는 귀재도 신화도 많지만, 잭 드레이퍼스(Jack Dreyfus, 1913~2009.3.27)처럼 풍운아라 불릴 만한 이는 드물다. ‘뮤추얼펀드(Mutual Fund)의 창시자 혹은 개척자라 불리는 그는 1950, 60년대 호황기 주식시장에서 독주하며 미국 증시를 키워 버핏이나 소로스 같은 귀재들의 무대를 일군 뒤 홀연히 사라진 투자자다.

그가 활약한 약 10년(1953~64년) 동안 ‘드레이퍼스 펀드’가 거둔 수익률은 ‘Investor’s Business Daily’에 따르면 604%로 2위 펀드 수익률보다 102%가 높았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 상승률은 346%였다. 그는 주식투자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13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리하이(Lehigh)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한동안 사탕가게를 하던 아버지를 거들며 지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그를 월 스트리트의 한 투자중개회사에 반 강제로 취직시켰다. 실은 취직이라고 하기도 그런 게, 그가 받은 첫 5개월의 급여(주급 25달러)는 아버지가 미리 회사에 맡겨둔 돈이었다.

어쨌건 그렇게 주식에 눈을 뜬 그는 1950년 독립해 투자회사를 설립했고, 2만 달러를 융자 받아 당시로선 드물게 TV광고까지 했다. 월 스트리트 지하철 역사를 걸어 나오는 위풍당당한 사자의 이미지, ‘콜럼버스, 최초의 투기꾼(speculator)’같은 홍보 문구가 먹혔다. 그는 공격적 투자가였고, 당시는 전후 경기와 자동차 등 제조업의 호시절이었다.

50년대 말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던 드레이퍼스는 경기가 식어가던 64년 돌연 은퇴, 승마와 경주마 육성사업, 체스, 골프 등 개인적 삶을 즐겼다. 그는 아마추어 골프 대회에서 18회나 우승했고, 체스도 선수급이었고, 뉴욕승마협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우울증을 치료 받으며 뇌전증(간질) 치료제의 일종인 페니토인(Phenytoin)의 효능에 반한 나머지 재단을 설립해 약 효능을 홍보하는 데 만년을 바치다시피 했다. ‘잭 드레이퍼스의 두 개의 삶’(1996)이란 제목의 자서전에서 그는 어렵던 청년기의 상상 즉, 늙은 록펠러에게 100만 달러를 받고 그가 돈 버느라 못 누린 즐거움을 대리 체험하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고, “록펠러는 아마 돈을 줬겠지만, 그랬으면 내 삶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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