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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조종사의 장례식

입력
2018.04.11 17:5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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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사들은 스스로를 ‘대기 인생’이라고 부른다. 기종과 비행대대별로 대기의 개념이 다르지만 출격 소요 시간에 따라 5분, 8분, 15분, 30분, 1시간 식으로 대기조가 짜여 있다. 이런 근무조는 365일 편성된다. 월 6,7회는 비상대기실 근무다. 조종복을 입고 완전 무장한 전투기와 함께 대기하다 적기나 미식별 항공기가 감지되면 즉각 출격한다. 비행은 거의 매일 1,2차례, 야간비행도 주 1,2회 또는 최대 3회까지 이뤄진다. 비행이 끝나면 비행 임무를 보고하고 평가ㆍ분석하는 디브리핑이 이어진다. 1년 내내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다.

▦ 공중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투기에 평온한 비행이란 없다. 적과의 조우를 가정한 공대공, 지상 목표를 타격하는 공대지 훈련이 이어진다. 전투기는 급강하, 급상승, 360도 회전 등을 반복한다. 그때마다 조종사는 엄청난 중력 가속도와 사투를 벌인다. 고속 급선회 시에는 세탁기처럼 혈액이 머리에서 빠져나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급강하 시에는 무중력 상태 이하가 돼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시야가 빨갛게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체내 실핏줄이 터져 조종사 신체에는 자주 멍이 든다.

▦ 조종사들에겐 안전 비행을 기원하는 징크스가 있다. 비행 전 나쁜 꿈을 꾼 조종사는 비행 제외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비행 장갑을 거꾸로 끼거나, 전투기를 넣어둔 이글루 옆에서 소변을 보는 조종사도 있다. 지상에 흔적을 남겨야 무사 귀환한다는 생각에서다. 남편이 출격한 사이 아내들은 지상에서 불안과 싸운다. 만일 기상이 양호한 평일에 전투기가 뜨지 않으면 부대 내 관사 아파트는 긴장과 공포에 휩싸인다. 추락 사고가 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경북 칠곡 유학산에 추락한 F-15K 조종사 2명의 장례식에 야당 의원 4명만 참석했다. 이유가 있겠지만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장병 장례식에 대거 불참한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의 무신경이 놀랍다. 조문은 했다지만 국방부 장관의 부재는 더욱 아쉽다. 유족들은 물론 추락 사고가 난 비행대대 조종사들은 동료를 잃은 충격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에 시달린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위무하는 것만큼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그래야 전투력도 회복하고 국가에 대한 헌신 의지도 살아난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메시지를 왜 아끼는가.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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