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사회적 성취 욕구
평등 교육받고 대학에 진학, 능력있는 딸서 애물단지로 추락
혼인풍속 흔들어
여성 연상커플 지속적 증가, 연인관계로 동거 사례도 많아
1970년대생들이 ‘결혼 파업세대’‘만혼 트렌드의 맏언니’소리를 듣는 것은 통계적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결혼적령기를 살짝 넘긴 30~34세 여성 미혼율을 따졌을 때 현재 50대 중ㆍ후반인 1956~1960년생은 당시 5.3%에 불과했지만 ▦40대 중ㆍ후반인 1966~1970년생은 10.7%, ▦30대 중ㆍ후반인 1976~1980년생은 29.1%로 수직 상승했다. 20년 사이 무려 6배, 10년 사이 3배 가까이 높아졌다. 결혼 보류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70년대생 여성들이 유독 많다.
▦일에 치여 놓친 혼기
여러 원인과 요인을 따질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높아진 여성의 대학진학률, 경제활동 참가율과 관련이 깊다. 산아제한정책에 따른 사회와 가정의 남녀 평등 교육 영향으로 70년대 출생한 여성들은 절반 가량(1995년 기준 여성의 대학 진학률 49.8%)이 대학에 진학해 교육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또 20~24세 때 경제활동참가율이 처음으로 60%대로 높아졌다. 그만큼 사회적 성취욕구가 강했고, 일과 사랑에 빠진 세대다.
패션MD(상품기획자) 8년 차로 지난 세월 야근을 밥 먹듯이 해왔다는 윤경희(38)씨. 윤씨는 직장생활 동안 데이트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혼까지 고려할만한 남자친구는 없었다고 했다. 윤씨는 “일의 성취감에 인생의 반쪽을 만나는 중요한 삶의 과정을 너무 소홀히 여겨 왔던 것 같다”며 “업무 성과를 함께 기뻐해 주시던 부모님도 요즘은 ‘얼마나 대단한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거냐’며 ‘울타리가 돼 줄 파트너를 빨리 만나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노처녀라고 하면 자유분방한 삶을 선호하는 이들이라 생각했는데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사는 내가 이 나이까지 미혼으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대기업 연구원 김모씨(40)도 외동딸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한 부모의 든든한 지원으로 학업에 열중하면서 자연스레 결혼이 늦어졌다. 일에 매달려 30대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능력 있는 딸’에서 집안의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됐다고 했다. 그는 “그간 쌓아 올린 사회적 성과 때문이라도 좋은 남자를 찾아 결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의도되지 않은 결혼 파업, 두려움도 커
이로 보면 사회적 성취를 삶의 중요한 목표로 뒀다가 결혼시장에서 도태된 ‘결혼 실직’ 상태이거나, 배우자 찾기에 소극적이게 된 ‘태업’상황인 경우가 적지 않다. 70년대생의 결혼 파업은 가정을 꾸리는 데 관심이 없거나 전통적인 결혼 관습을 거부하는 적극적 파업이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파업 성격이 짙다.
일가친척 중 홀로 미혼이라는 광고기획자(AE) 이모씨(37)는“때가 되면 나에게 맞는 인연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혼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 역시 밥 먹듯 돌아오는 밤샘 작업도 남자 동기들이 그러듯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입사 초기 5년 간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일을 삶의 우선순위로 둔 커리어우먼이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오른 이들의 삶은 일견 풍요로워 보인다. 돈에 쪼들리지 않아 해외여행에 구애 받지 않고, 활동적인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골드 미스’라는 말이 나왔다. 패션 디자이너 장모씨(40)는 “가벼운 텐트와 취사도구만 넣어 배낭을 메고 떠나는 캠핑을 말하는 백패킹, 스쿠버다이빙 등을 제약 없이 취미로 즐기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면서도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막연한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에 의지할 사람을 이제는 찾고 싶다”고 말했다.
화려한 여가는 외로움, 불안감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나아가 결혼 적령기가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생활을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역시 커진다. 장씨는 “이미 결혼한 친구들이 출산과 육아 책임으로 개인 시간을 못 갖는 모습을 많이 본다”며 “이런 풍토도 내가 결혼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결혼 문화도 주도
70년대 출생 여성들의 결혼 보류 현상은 결혼문화의 변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여성 연상 커플이 늘고 있는 게 그 중 하나다. 배우자의 교육, 직업 등 사회적 조건이 최소 자신 이상은 돼야 한다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옛날 관념에 구애 받지 않는 게 주요한 배경이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정모씨(40)는 4년 전 현실적인 조건 문제로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전문직이었던 남자친구가 정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무리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중소기업에 다니는 2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정씨는 “결혼 실패 경험을 통해 내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상황에서 굳이 사회적 조건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보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삶을 일궈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2010)의 저자로, 현재 미혼인 윤단우(42)씨는 “30대에는 연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져야 한다고 믿었지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연인관계를 오랜 기간 지속 중”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한 집에서 동거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남자친구와 자유롭게 왕래하며 5년째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동거 후 결혼 여부를 결정하는 형태가 이미 70년대부터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70년대 출생한 여성들은 사회적 성취 욕구가 급격히 높아진 세대지만 자유분방해서라기보다 소위 나이, 지위, 교육의 남고 여저 결혼문화가 완고한 시기에 결혼 적령기를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미혼으로 남게 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미혼인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의도치 않게 여성 연상 부부 등 전통적 가부장적 결혼과는 다른 형태의 결혼문화는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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