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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신보건법 시행 성큼…“기존 입원환자도 50% 퇴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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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신보건법 시행 성큼…“기존 입원환자도 50% 퇴원해야”

입력
2017.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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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입원 치료 중인 환자 절반 정도가 퇴원해야 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신병원 병동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 5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입원 치료 중인 환자 절반 정도가 퇴원해야 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신병원 병동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신질환자 인권보호를 위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올 5월 원안대로 시행되면 정신질환자 치료에 엄청난 혼란과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관련 학회와 전문의들은 “정신질환자 인권 강화를 위해 마련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인권탄압법으로 바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조기 퇴원한 정신질환자의 사회적응과 지속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인프라가 거의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 대책 TFT위원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의 50%는 법 기준에 맞지 않아 퇴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는 6만9,388명(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이 가운데 3만4,694명이 퇴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 제43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 등에서 입원치료 또는 요양 받을 만한 정도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정신질환자 자신의 건강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어야 입원이 가능하다. 결국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입원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거의 어렵기 때문이다.

“8월, 정신질환자 절반 퇴원해야”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서 입원심사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인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퇴원한 환자들을 제대로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입원심사만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법 시행 후 3개월이 지난 올 8월에 병원에서 무더기로 정신질환자들을 퇴원하게 될 것”이라며 “치료해야 하는 환자를 조기에 퇴원시키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는 법 개정 시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WHO는 정신병원에서 치료해야 하거나, 자해나 남을 해칠 위험이 있으면 입원치료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인용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입원치료가 가능하다고 법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조울증 환자는 입원치료를 할 수 없다. 조울증이 심해지면 도박, 음주 등 일탈이 심해진다. 이에 따라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정신ㆍ물질적 피해를 입으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환자는 자해하거나 남을 해치지 않으면 입원시킬 수 없다.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방치되는 역효과를 낳는다.

전문의 140명이 10만명 입원 결정?

정신질환자의 보호입원(강제입원)은 인신을 구속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환자 보호입원시킬 때 인권보호를 위해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특히 국ㆍ공립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을 내야 입원시킬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140명에 불과한 국ㆍ공립정신병원 전문의가 500여 민간 정신병원을 돌며 한 해 환자 10만 명씩 심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정신병원 원장은 “시간ㆍ경제 여건도 맞지 않고, 인력도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입원 취소 소견을 냈다가 환자가 폭력이나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면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어 기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입원병원 전문의처럼 환자를 정밀히 관찰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원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 것”이라며 “자칫 치료시기를 놓쳐 환자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민간 정신병원을 지정병원으로 만들어 환자 입ㆍ퇴원 여부를 가리겠다는 법조항도 ‘꼼수’라는 비판이다. 권 위원장은 “국ㆍ공립병원 전문의로는 법을 시행할 수 없어 민간정신병원 의사들을 동원하려 하는 것 같은데 의사가 자기 병원 환자를 보지 않고 다른 병원 환자 입원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복지부가 관련 예산도 없이 ‘일단 해보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ㆍ공립 정신의료기관 전문의 수를 단계적으로 늘리기 위해 행정자치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정신질환자 인권보호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정신의료기관, 관련 학회 등과 긴밀히 협조해 법이 원활하게 시행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입원 가능한 국내 정신의료기관 현황]

(단위 : 개소, 병실, 명)

<자료: 보건복지부(2015.12.31 기준, 국립법무병원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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