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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호흡한 가왕… 그는 지금도 매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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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호흡한 가왕… 그는 지금도 매일 연습한다

입력
2018.04.1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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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ㆍ클래식ㆍ동요 등 아우르고

예순 넘어 경쾌한 랩 부르기도

최신 음악흐름 놓치지 않으려

유튜브로 콘서트 영상 등 접해

준비되지 않으면 무대 안 서는

완벽주의자로도 유명

판소리로 목을 단련한 덕에

후두염 앓고도 평양공연 소화

술은 몇 달에 한 번 꼴로 마신다. 소식을 하며 오후 6시 이후엔 금식한다. 일흔을 앞둔 가수 조용필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들려준 체력 유지 비결이다. 조용필50주년추진위원회 제공
술은 몇 달에 한 번 꼴로 마신다. 소식을 하며 오후 6시 이후엔 금식한다. 일흔을 앞둔 가수 조용필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들려준 체력 유지 비결이다. 조용필50주년추진위원회 제공

“하나 둘 셋!”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40~50대로 보이는 20여 명이 길거리에 모여 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손에는 하나 같이 ‘Thanks to you(땡스 투 유)’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팬들이 조용필(68)의 가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변 고층 건물에 대형 현수막을 달고 벌인 깜짝 이벤트였다.

위대한탄생과 미지의 세계, 이터널리 등 조용필 3대 팬클럽이 십시일반으로 돈(1,400만원)을 모아 ‘일’을 벌였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10~20대 못지않은 열정이다. 조용필 팬클럽 이터널리 운영진인 남상옥(50)씨는 “우리가 아이돌 팬의 원조잖냐”라고 웃으며 선수를 쳤다. 조용필의 입에서 “기도하는~”(노래 ‘비련’)이란 소리가 흘러 나오면 “꺅!”이란 함성이 조건반사처럼 튀어 나왔던 1980년대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현수막엔 ‘음악은 그의 삶이었고, 그의 음악은 우리의 삶이 되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요즘 아이돌 팬들이 우리 따라 잘하고 있던데요?” 가수 조용필의 3대 팬클럽(위대한탄생과 미지의 세계, 이터널리)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 빌딩 벽에 조용필 데뷔 50주년 축하 현수막을 건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양승준 기자
“요즘 아이돌 팬들이 우리 따라 잘하고 있던데요?” 가수 조용필의 3대 팬클럽(위대한탄생과 미지의 세계, 이터널리)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 빌딩 벽에 조용필 데뷔 50주년 축하 현수막을 건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양승준 기자

“대한민국의 음악 교과서”

1980년 3월의 어느 날.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탄생 회장인 윤석수(55) 안동대 물리학과 교수는 조용필 1집 타이틀곡 ‘창밖의 여자’를 처음 들었을 때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대구 서구 계성고 2학년이던 학생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온 이 곡의 멜로디에 이끌려 바로 LP를 샀다. 윤 교수는 “한국에도 이런 노래가 있어? 싶었다”고 옛일을 떠올렸다. 트로트가 주류를 이뤘던 당시 가요계에 고풍스러운 록 발라드 스타일의 ’창밖의 여자’와 신시사이저로 ’뿅뿅’ 소리를 내는 디스코풍의 ‘단발머리’는 파격이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후 히트곡이 쏟아졌다. 조용필은 ‘못 찾겠다 꾀꼬리’(1982)로 KBS 음악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10주 연속 1위를 해 곡당 1위 횟수 제한 규정을 만들게 하고,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1980)을 하는 등 안팎으로 최고와 최초의 기록을 수없이 갈아치웠다.

조용필이 ‘가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친근한 멜로디와 공감 가는 노랫말의 힘이 컸다. 조용필은 시대와 호흡했다. 1975년 재일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동포 700여 명이 부산으로 처음 입항할 때 흘렀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국민을 울렸고, ‘허공’의 탄식은 학수고대하던 민주화가 12ㆍ12 사태로 물거품이 돼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다.

조용필은 대중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모험을 거듭했다. 예순 셋이던 5년 전엔 경쾌한 목소리로 랩(‘바운스’)까지 했다. 최근에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자주 이용한다. 최신 음악과 콘서트 영상을 접하며 요즘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다. 조용필은 국악(‘한오백년’)을 비롯해 클래식(‘내일을 위해’), 블루스(‘대전 블루스’), 뮤지컬 (‘도시의 오페라’), 동요(‘난 아니야’)까지 아울렀다. 그의 후배들로부터 “가요계를 전쟁터로 비유하면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조용필 동상 있어야 한다”(가수 신승훈)거나 “대한민국의 음악 교과서”(프로듀서 유희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50년 ‘연습생’… ‘킬리만자로의 표범’ 2년 여 뒤 공연한 이유

“조용필은 8집(1985)을 낸 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노래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시달렸지만, 곡이 나온 지 2년여가 지나서야 무대에서 이 곡을 불렀다.”(김희갑 작곡가). ‘킬라만자로의 표범’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이란 긴 낭송으로 시작된다. 이 대목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곡이 입에 완전히 붙은 뒤에야 무대에서 선보인 것이다. 빈틈없는 공연으로 유명한 조용필의 완벽주의자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왕’은 여전히 ‘연습생’이다. “전국 순회 공연이 잡히면 공연 두 달 전부터 자신의 밴드 위대한탄생과 공연처럼 하루에 두 타임씩 연습한다.”(안호상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위원장) “조용필은 CEO형 음악가”(김상화 음악평론가)이기도 하다. ‘숨은 고수’를 찾아내 위대한탄생을 요람으로 창작의 지평을 넓혔다. 건반연주자 이호준(1950~2012)을 비롯해 밴드 사랑과평화의 베이시스트 송홍섭, 봄여름가을겨울의 기타리스트 김종진, 피아니스트 김광민, 건반연주자 정원영, 유재하(1962~1987) 등을 발굴한 게 대표적이다.

1980년 데뷔 시절 조용필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 데뷔 시절 조용필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금물로 목 단련한 ‘야인 생활’

고된 역경의 시간이 없었다면 ‘국민 가수’의 탄생도 없었다. 조용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보리밥에 단무지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1968년 록밴드 앳킨스로 데뷔했을 때다. 조용필은 칼럼집 ‘바람이 전하는 말’(1985)에서 ‘밤무대를 찾아 헤맸으나 ‘그것도 음악이냐?’는 냉소를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더 큰 악재가 찾아왔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1972)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77년 은퇴를 선언했다. 남산의 중앙정보부 지하 취조실에서 심한 고초를 겪은 뒤였다.

조용필은 ‘야인’처럼 살았다. ‘음악과 자유가 선택한 조용필’(2018)을 쓴 구자형 방송 작가에 따르면 조용필은 지방의 작은 숙소에서 TV를 보다 배경 음악으로 ‘한오백년’이 흐르는 걸 듣고 판소리를 파기 시작했다. 한의 소리에 빠져서였다. 조용필은 소금물로 목을 단련했다. 이달 방북 공연에서 조용필이 후두염을 앓았는데도 소리의 갈라짐 없이 무대를 이끈 비결이다.

조용필은 탁성까지 내게 됐고, 그의 목소리는 깊어졌다. 우여곡절을 겪고 낸 앨범이 바로 ‘창밖의 여자’와 ‘한오백년’이 실린 1집이었다. 조용필은 반독재 운동으로 감옥생활을 하다 나온 김지하 시인을 만나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통도사 극락암으로 고승인 경봉 스님(1892~1982)을 찾아가 음악의 길을 물으며 이야기를 찾았다.

낯가림은 심하지만, 정은 깊다. “8년 전인가, (조용필) 형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큰 수술(뇌종양 제거)했다는 얘기 들었다며 어디냐고요. 클럽에서 만났는데 위로와 함께 기타로 즉흥 연주를 해주셨어요. 깜짝 놀랐죠. (영국 유명 기타리스트) 제프 벡 같았다고 할까요. “(작곡가 정원영)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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