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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론스타 5조 청구서는 실체가 없다

입력
2015.06.0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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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계약 파기 책임 한국정부에 묻는 건 중재 회부 시한 지나 실효

한국법원 판결 외국 중재인이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론스타 기세등등

납세자면 누구나 론스타 청구서 읽을 수 있어야 법치주의 바로 설 것

연극이 시작했다. 어두운 무대 가운데 세 명의 외국인 심판관이 앉아 있다. 구석에는 대한민국의 자리가 있다. 론스타가 등장하더니 한국에게 청구서를 내민다. 한국이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자 론스타는 한국을 일으켜 세워 심판관 앞의 피고석에 앉힌다. 심판관 중 한국의 법과 문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 심판관의 세치 혀를 쳐다보고 있다.

이 연극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무대를 좀 더 자세히 보자. 특이하다. 관객이 없다. 연극의 3요소의 하나인 관객이 없다. 연극이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아주 많은 관객들이 입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배우들이 극장의 문을 걸어 잠갔다. 론스타 청구서는 무대의 짙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

입장을 거부당해 극장 밖에 모여 있는 시민에게 한국의 법무부 공무원이 속삭인다. “청구서는 46억 7,900만달러, 우리 돈으로 5조 1,328억원짜리입니다. 처음에는 43억 7,800만달러짜리였답니다. 도중에 3,000억원을 올렸네요.” 객관적 예측이라며 한국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 주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학자도 있다. ‘쿨’하게 돈을 주어 이제는 론스타를 보내 주자고 말하는 기자도 있다.

무대 위와 극장 바깥의 세계가 온통 연극이다. 론스타의 5조원 청구서는 무대의 어둠 속에 묻혀 있는데, 극장 앞의 길가에서 시민에게 지갑의 돈을 꺼내라고 말하는 세상은 충분히 한 편의 연극이다. 시민의 입장을 금지시키면서 시민에게 연극 무대와 배우 비용으로 265억원을 거둔 일보다 더 연극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론스타의 5조원 청구서는 실체가 없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입에 투자한 돈은 2조 1,570억원이었다. 그리고 론스타는 2006년 5월에 국민은행에게 6조 3,000억원에 파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론스타는 4조 1,430억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으나 계약은 그 해 11월에 파기되었다. 론스타는 지금 이 계약 파기가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에서 비롯했으므로 차액을 청구하라는 것인가?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5년이라는 중재 회부 시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제중재 회부 의향서를 보낸 날짜인 2012년 5월 21일은 계약파기일로부터 이미 5년이 지났다. 론스타가 이 5년의 장벽을 넘을 방법은 없다. 론스타는 5년 시한 규정이 없었던 옛 한ㆍ벨기에 투자협정을 이용하여 한국을 중재에 회부한 것인가?

이 방법도 불가능하다. 론스타가 워싱턴디시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한국을 회부하려면 한국과 론스타 사이에 ‘투자’ 분쟁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옛 협정에는 ‘투자’를 ‘농업 공업 광업 임업 통신 및 관광’분야로 규정했다. 3조 1항에 그렇게 못 박아 두었다. 그러므로 론스타의 외한은행 주식 매입은 옛 협정의 투자가 아니다. 따라서 론스타와 한국 사이의 분쟁은 옛 협정에 의하면 투자분쟁이 아니다. 론스타는 한국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회부할 자격이 없다.

누가 론스타의 5조원 청구서를 보았나? 청구서에는 국세청이 론스타에게 부과한 세금을 돌려 달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ㆍ벨기에 투자협정에는 한국에서의 재판 구제 절차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없도록 했다(8조 3항). 그런데 론스타는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15건이 넘는 조세 소송을 한국 법원에서 진행했다.

이 중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벨기에에 세운 서류회사가 원고인 소송도 있다. 이 국내 소송은 외환은행 주식을 하나은행에 3조 9,000억원에 팔면서 3,876억원의 법인세 낸 것을 다툰 것이다. 벨기에 서류회사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일부 승소해서 1,772억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패소한 남대문 세무서장이 항소했다. 지금 항소심이 서울 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론스타가 국제 중재에 이 벨기에 회사를 다시 앞세워 똑같은 세금 반환 청구를 할 수는 없다.

이제 론스타의 5조원 청구서를 밝은 대낮에 시청 광장에 걸어 두어야 한다. 지나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 청구서가 론스타가 2008년 9월에 홍콩상하이 은행에 약 6조원에 팔기로 한 것이 좌절된 책임을 한국에 묻는 것이라면 터무니없다. 당시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제금융위기가 확산되던 때였다. 그래서 홍콩상하이은행이 계약 해제권을 정당히 행사한 것이다.

론스타의 청구서는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4조 7,000억원에 팔기로 했던 것을 3조 9,000억 원으로 낮춰 팔았던 책임을 한국에게 묻는 것인가? 이것은 론스타 책임이다. 그 사이에 론스타가 외한신용카드 주가 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론스타 스스로가 상소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되었다.

무엇이 두려워 론스타의 청구서를 어둠에 감추는가? 한국 법원의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 자격 심사 절차에서‘동일인 관계 회사와 자산규모를 임의로 축소 신고하거나 신고에서 누락했다’. 이는 론스타는 한ㆍ벨기에 투자 협정에서 보호하는 대상인 ‘적법한’ 투자자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론스타는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할 자격이 없다.

밝은 햇빛과 법치주의가 필요하다. 론스타가 기세를 올리는 것은 아무리 한국의 법원이 법과 정의의 판결을 하더라도, 세 사람의 외국인 중재인이 이를 결국 뒤집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론스타에게 매긴 법인세만 보자. 대법원은 2007년부터 실질과세의 원칙을 외국의 명목상 서류회사들에게도 적용했다. 국세청은 이를 근거로 이중과세방지협정 적용 대상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제외하여 법인세를 부과했다. 만일 대법원의 원칙이 세 명의 국제중재인에 의해 무너진다면, 한국 국세청은 페이퍼 컴퍼니에게 계속 세금을 매길 수 있을까? 사법부의 판결이 정부에게 권위를 잃으면 더 이상 법치주의라 할 수 없다.

론스타 극장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 관객의 입장을 허용해야 한다. 무대의 등잔을 밝혀 시민이 론스타와 정부의 변론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납세자라면 누구나 론스타의 청구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의 밀실 무대를 납세자의 광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법치주의가 산다.

송기호 변호사ㆍ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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