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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Do Not 리스트] ⑦정부조직 붙였다 뗐다 그만하라, 혼란만 생긴다

입력
2017.05.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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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정권초 ‘부처 이합집산’

1948년 정부 수립후 73회 개편

장기간 조직 유지한 선진국과 달라

文정부, 과학기술부 부활 등

조직 개편 공약 내걸고 집권

“일하는 방식 개혁에 주력해야”

“인천에 있다 세종으로 왔는데 다시 부산으로 갈 지도 모르겠네요.”

해양경찰(해경) 간부 A씨는 요즘 뒤숭숭한 해경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외청(본청 인천)이었다가 국민안전처(본청 세종) 소속이 된 해경을 해양수산부로 다시 옮긴다는 얘기가 파다하기 때문이다. 전직 해수장관을 지낸 부산 출신 정치인은 최근 해경의 해수부 이관 문제를 공개석상에서 거론했다. A씨는 “정권 교체 기간인 5년도 아니고 해경 개편(세월호 사고 직후) 3년 만에 다시 개편 얘기가 나온다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정부수립 후 부처개편 73회

부처를 없애고, 새로 만들고, 특정 기능을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하는 것은 매 정권 초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만 무려 73회에 달한다.

금융정책ㆍ감독 분야만 해도 정권마다 조직개편이 반복됐다. 98년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금융감독기능이 재정경제원에서 분리돼 금융감독위원회(정부기구)가 설치됐고, 이듬해 은행ㆍ증권ㆍ보험감독원을 통합해 금융감독원(특수법인)이 생겼다. 이명박 정부에선 정책(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감독(금감위) 기능이 합쳐져 금융위원회가 됐다.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93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합쳐져 상공자원부가 됐다 94년 통상 기능이 추가돼 통상산업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통상을 외교부에 주고 산업자원부가 됐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부터 지식경제부로 불렸다. 박근혜 정부 때 통상 기능을 되찾아 산업통상자원부가 됐지만 최근 통상을 또 외교부에 넘겨주는 조직 개편이 거론되면서 ‘통상’자를 뗄 처지에 몰렸다.

1년이 멀다고 반복되는 ‘부처 이합집산’은 수십년간 진득하게 조직을 유지해 온 주요 선진국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미국 연방정부 각 부처는 60년대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 재무부와 국무부는 1789년 창설 후 계속 같은 기능과 부처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다른 부처 역시 내무 법무 농무 상무 등 고전적 명칭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권력구조)인 프랑스도 정부조직 개편이 잦긴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행정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프랑스는 부처를 개편하면 하부조직(실ㆍ국ㆍ과)까지 다 흔드는 대신 국(局)단위 조직을 하나의 ‘블록’처럼 보존해 통째로 부처를 이동하는 식의 개편을 한다.

조직개편에 집착하는 이유

문제는 한국이 정부조직 개편을 계속했지만 정부가 ‘일을 잘 한다’는 평가는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을 작게 만드는 개편을 단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 정부에 비해 자원 투입 규모는 2.8배 증가하기도 했다.

정부조직 개편이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이뤄지지 않고 청와대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식의 조직 개편이 되다 보니, 부처 입장에선 일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조직의 ‘방어논리’를 앞세우거나 정권 실세에 호소하는 식으로 조직을 보전하려 드는 경우도 많다.

역대 정권에서 정부조직 개편이 성과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는데도 왜 새 대통령은 정권만 잡으면 부처를 만들고 없애는 일을 반복할까?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라며 “지난 정부는 모두 악(惡)이고 나는 모두 선(善)이라 생각하는 정치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답했다.

새 대통령이 공무원 조직을 단숨에 휘어잡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조직 개편 카드를 쓰는 측면도 없잖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조직개편을 통해 공직사회를 흔들어 장악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임 대통령이 5년 동안 공직사회에 주입한 가치관을 깨부수기 위해, 조직을 흔드는 ‘충격요법’을 쓴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정부조직 개편 관련 공약ㆍ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개편, 과학기술부 부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개편이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되는 식의 조직 개편은 아니 한 만 못하다고 지적한다. 가뜩이나 인수위 과정도 없이 즉각 실전에 투입된 문 대통령이 초기에 정부 조직 개편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하드웨어만 바꿔 끼우는 식의 대규모 조직개편은 단언컨대 필요 없다”며 “하드웨어 개편은 최소 수준으로 접근하고, 그보다 더 주력해야 할 것은 공무원 조직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소프트웨어의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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