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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등록 : 2017.04.06 11:21
수정 : 2017.04.06 14:52

[천종호의 판사의 길] 법관의 독립

등록 : 2017.04.06 11:21
수정 : 2017.04.06 14:52

재판은 판사직의 본연이다. 때문에 판사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 재판 업무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판사가 있다면 그는 판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는 데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판사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연의 직에 오래 충실했던 판사를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법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많은 고뇌의 시간과 불면의 밤을 보내며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준엄한 선언이자 사법부 독립의 출발점이다. 법관이 갖추어야 할 미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함’인데, 재판에서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헌법은 법관의 독립을 특별히 규정해두고 국민과 법관 모두 이를 지켜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법관이 독립해서 결론을 내리기까지에는 정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가 있는데, 이들을 무사히 극복해야만 법관의 독립을 위한 기초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법관은 권력기관이나 여론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을 이겨내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SNS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재판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고, 어떤 의견들은 법관들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기도 한다. 더구나 재판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당해 법관만의 것이기에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법관은 여론 앞에 홀로 선 자(獨者)’로서 홀로 모든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법관의 여정에는 꽃길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동료, 선후배나 지인들의 청탁을 거절함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될 ‘고독함’도 각오해야 한다. 법관도 인간이기에 사람과의 만남과 사회적 관계 유지를 그만둘 수가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법관 윤리에 위배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만일의 경우에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사사로운 정을 물리칠 수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법관은 재판을 함에 있어 이러한 곤란을 극복하고 헌법과 법률이 대표하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법관의 독립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양심’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다. 이는 법관이 준수해야 할 ‘직책상의 윤리’를 넘는 것이다. 자신의 결론과는 다른 결론을 선언하는 상급심의 판단에 따르는 것, 자신의 사상과는 다른 사상적 배경 아래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법관의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법관이 직책상 지켜야 할 윤리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20년 간 1년의 해외연수 기간을 제외하고는 재판업무에서 떠난 적이 없다. 재판업무를 수행해 오는 동안 어떤 때에는 사건을 종결시키고도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이 죽은 사건에서 위자료산정기준에 따라 위자료를 정했는데 그 액수가 너무 낮다고 유족들이 항변할 때, 식당에서 3만 원의 돈을 훔친 피고인에 대하여 이전의 범죄전력 때문에 징역 3년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때, 가정해체로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용돈이 부족하여 절도를 한 소년을 보살펴줄 곳이 없어 할머니의 보호에 다시 맡길 수밖에 없을 때, 거꾸로 보호할 사람이 없어 비행을 저지른 아이를 대안가정에 맡겼는데 부모가 없어 자신을 차별한다고 절규할 때, 절도죄의 피고인인 임신한 소녀를 석방하지 않고 실형을 선고하였는데 수형생활 중에 아기를 출산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그런 경우이다.

이 불편함은 사건을 종결시키기까지 최선을 다했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공정함도 유지하였으며, 최종 결론이 법에 위반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세미한 음성’이다. 이 불편함이 닥쳐 올 때는 새벽동이 틀 때까지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 불편함의 근원이 바로 양심이 아닐까.

주로 외부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 ‘두려움’이나 ‘고독감’과는 달리 ‘불편함’은 내면, 다시 말해 양심에서부터 비롯된다. 법관은 양심에 따르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건을 처리할 때 누적된 선례와 사회적 관습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마음의 불편함을 초래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불편함을 해소할 길이 달리 없다면 당해 사건에서 적용될 법률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거나 제도의 개선을 요청하는 등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법관의 진정한 모습이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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