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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갈림길에 선 한국경제

입력
2016.0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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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ㆍ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부진한 지표들 제조업 한계 확인

정부 주도ㆍ재벌 중심 모형 종언

‘원샷법’도 퇴행적 인식 드러내

지난 달 말에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두 지표가 발표됐다. 먼저, 한국은행의 속보치에 의하면, 2015년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2.6%였다. 둘째, 2015년 4분기 기업 실적을 보면, 국내 주축산업인 IT전자ㆍ 자동차ㆍ 철강ㆍ석유화학 등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포함한 주력기업의 수익성이 두드러지게 악화했다.

문제는 이처럼 부진한 작년도 지표들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데 있다. 제조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세계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제조업 성장률은 경제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제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무역특화지수(상대적 수출비중)도 하락하고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에 의존하는 한국 제조업이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른바 중국 특수가 없었다면, 한국 제조업은 이런 한계점에 더 빨리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특수가 지속된 지난 25년 간 한국경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의 구조조정을 등한시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기적으로 불리는 이런 경제발전은 정부주도ㆍ재벌중심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모형을 통해 달성됐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되어 금융시장이나 부품시장과 같은 제도적 불비(missing institutions) 문제가 해소된 현 시점에서, 이런 발전 전략은 혁신형 경제로의 이행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많은 경제학 연구들이 강조하듯, 복지가 구비된 포용적 시장경제체제야말로 혁신형 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 정부의 한국경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퇴행적이다. 정부주도ㆍ재벌중심의 경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 작금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은 기업 진입과 퇴출에 대한 시장의 기능을 정부가 대신하고 재벌들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가격경쟁력에 매달리는 한국 제조업을 연명시키는 효과만 낳을 수 있다.

비록 원샷법이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재편으로 대상을 한정한다고는 하나, 과잉공급에 대한 판단은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의 자의적 결정에 따를 개연성이 크다.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 및 신산업 진출을 위한 사업재편이라는 명목으로 정부 지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재벌기업에 대한 금융 및 재정 지원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산업의 과잉공급이나 기업의 부실화와 같은 긴급성이 있는 경우라면, 이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부실징후기업으로 다룰 수 있다. 그 정도의 긴급성이 없다면, 원샷법으로 상법상의 소액주주 및 채권자 보호 장치를 무력화할 이유가 없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재편을 반대할 주주나 채권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나 채권자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잉공급이라는 핑계로 기업들에게 전횡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법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욱이 원샷법은 과잉공급 산업에 대한 구조 조정과 무관한 지주회사 및 기업집단에 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 기업집단의 재무적 건전성과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 완화는 재벌의 잠재적 부실화와 경제력집중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중국경제의 성장률 감소, 엔화 약세, 미국 금리 인상, 신흥국 경제 위기 가능성 등등 국제 환경이 어느 때보다 암울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진통제로 통증을 없애는 처방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당장 눈앞에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잔꾀로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박상인 서울대교수
박상인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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