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주객이 전도된 4차 산업혁명

입력
2018.02.02 11:35
27면
0 0

오늘도 우리는 매일같이 습관적으로 각자의 삶터에서 주어진 하루 일과와 마주한다. 그리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잊고 살아가는 시간이 적지 않다. 급변하는 환경과 극심한 경쟁 속에서 그저 눈앞에 다가온 매 순간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달리다 보면 더욱 그렇다. 어떤 가치를 붙들고 지켜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사회도 길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리고 있다.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때다.

언제부터인가 4차 산업혁명은, 활력을 잃고 길을 헤매는 우리 사회에 이정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정부는 관련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기업들도 시장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앞 다투어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가고 있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정신 없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실현해야 할 가치도,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도 아니다. 우리가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일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는 경쟁열위를 피하기 위한 묻지마 식 투자가 아닌 경제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술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고 공유해야 할 가치를 정의하고 그 가치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던이라는 인구 1만 4,000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 대부분이 노동자 계층이며, 아침이면 집 주변 식당에 모여 종업원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푸짐한 아침 식사와 커피를 즐기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구독률 112%를 자랑하는 지역신문 ‘데일리 레코드’가 있다. 아침에 식당에 들르는 손님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이 신문이 들려 있다. 신문 산업이 쇠퇴해 가고 대부분의 지역신문이 폐간되는 상황에서 1950년 창간되어 지금까지 지속적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창업자 후버 애덤스는 지역 주민들의 이름과 함께 지역 소식만을 전하는 신문을 발행한다는 창업철학을 ‘이름, 이름, 그리고 또 이름’이라는 구호와 함께 오늘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신문들이 전국과 세계 각지의 뉴스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정작 지역 소식에는 일부 지면만을 할애하는 것과 달리 ‘데일리 레코드’는 철저하게 지역 소식만을 다룬다. 애덤 스미스는 한 인터뷰에서 “만약 던 주변 지역에서 원자탄이 터진다고 해도 우리 도시에 파편이 직접 튀지 않으면 그 소식은 우리 신문에 기사로 실릴 수 없다”라고 말한다. 지역 주민들의 소식을 그들의 이름과 함께 기사화함으로써 ‘데일리 레코드’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으며 신문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켰다.

‘데일리 레코드’는 창간 이후 시장에 소개되는 신기술들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혁신은 ‘데일리 레코드’에게 세대를 뛰어 넘어 세월을 이겨내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지켜 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신문 산업이 쇠퇴해가고 대부분의 지역신문이 폐간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혁신을 목적이 아닌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칫 4차 산업혁명을 우리가 추구해야 최선의 가치로 잘못 이해했다가 또 다시 나아갈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맬까 두렵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