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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주식 거래는 사실상 위조지폐 유통... 시스템도 감독도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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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주식 거래는 사실상 위조지폐 유통... 시스템도 감독도 '먹통'

입력
2018.04.09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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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주식도 자사주도 없어

시스템상으로 불가능한 배당

전산 입력만으로 가짜주 생산

30분도 채 안돼 주식 대량 매도

당국은 알지도 막지도 못해

피해 입증 등 보상도 혼선 예상

당국 “모든 증권사 일제 점검”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증권 배당착오에 따른 소위 '유령주식' 거래와 관련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증권 배당착오에 따른 소위 '유령주식' 거래와 관련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삼성증권의 ‘112조원대 배당 지급 오류’는 규모는 물론 사고 유형조차 전례가 없는 최악의 금융 사고였다. 증권사가 보유 중인 주식이 없어 물리적으로 배당 자체가 불가능한데도 시가총액(3조4,247억원)의 32배에 이르는 ‘유령 주식’이 만들어졌고 실제 거래소에서 매매 체결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개념만 놓고 보면 위조지폐가 버젓이 시장에서 거래되는데도 당국은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셈이다. 금융감독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8일 금융당국과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6일 삼성증권 배당 담당 직원은 우리사주(283만1,620주ㆍ지분율 3.17%)를 보유 중인 직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배당 지급 창에 단위를 ‘원’ 대신 ‘주’로 입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삼성증권이 정한 배당금은 주당 1,000원. 그러나 배당 단위를 잘못 입력한 탓에 각 계좌엔 주당 삼성증권 주식 1,000주가 지급됐다. 우리사주 100주를 보유한 직원은 배당금으로 10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삼성증권 주식 10만주를 받았다. 더구나 삼성증권이 잘못 지급한 주식 수는 실제 상장주식수(8,930만주)보다 31배나 많은 28억주(전날 종가기준 112조원치)에 달했다.

문제는 애초부터 이는 시스템상으로는 불가능한 배당이란 데에 있다. 삼성증권은 처음부터 배당금으로 주식이 아닌 현금 지급을 결정한 만큼 따로 주식을 발행한 게 없다. 특히 삼성증권은 보유 중인 자사주도 없었다. 배당으로 주식 지급이 불가능한 구조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증권사의 전산 입력 만으로도 가짜 주식을 얼마든지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삼성증권 일부 직원은 본인들 주식계좌에 잘못 입금된 주식을 전후 상황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주식을 내다팔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식을 배당 받은 삼성증권 우리사주 직원(2,000여명) 중 16명이 30분도 채 안 되는 사이 주식을 매도했는데 이들이 판 주식은 501만2,000주(전날 종가기준 1,995억원)나 됐다. 이 여파로 삼성증권 주식은 장중 11%나 폭락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처럼 황당한 배당 착오로 큰 혼란이 벌어졌는데도 당국은 사흘이 지나도록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8일 금융감독원 등과 긴급 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실제 삼성증권이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사주의 개인 계좌로 주식배당을 처리할 수 있었는지, 또 일부 물량이 장내에서 어떻게 거래가 이뤄질 수 있었는지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이런 사례가 없었던 터라 우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당국은 삼성증권 사태를 계기로 뒤늦게 모든 증권사를 상대로 계좌관리 시스템을 일제 점검키로 했다.

허술한 전산 시스템과 일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이를 걸러내지 못한 내부통제와 감독당국의 안일한 자세까지 맞물리며 사태의 파장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국내 대형 증권사에서 이 같은 전산 실수가 일어난 것은 당국의 감시망은 물론 국내 증권 거래 시스템 자체도 허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삼성증권의 경우 예탁결제원에 주식이 등록되기도 전에 가짜 주식이 그대로 직원들 계좌에 입고됐고, 실제 매매까지 성사됐다. ‘예탁원 등록→발행→매매’가 아니라 ‘발행→매매→등록’순으로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삼성증권이 사고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면 장이 끝날 때까지 유령주식 유통이 계속될 수 있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그 동안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던 터라 당국의 규제도 이런 변수들을 걸러내기 어려웠다”며 “앞으로 이런 부분까지 감안해 시스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 지도 미지수다. 당국은 투자자 피해 및 시장 혼란 최소화를 위해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삼성증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소송 등의 과정 없이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주식 급락에 따른 피해 사실은 개인 투자자 스스로 입증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피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지 논의 중”이라며 “투자자 피해와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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