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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사회 질린 여심, 다정한 연하남 정해인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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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사회 질린 여심, 다정한 연하남 정해인에 빠지다

입력
2018.04.13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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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30~40대 여성들에 큰 인기

직장 생활하는 여자 주인공

무책임하고 성추행 일삼는

남성 상사들의 횡포에 고통

연하남 따뜻한 말 한마디에

삶의 위안 얻고 사랑 ‘공감’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에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ㆍ오른쪽)는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과 헤어진 후 친구 동생 서준희(정해인)와 농밀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 JTBC 제공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에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ㆍ오른쪽)는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과 헤어진 후 친구 동생 서준희(정해인)와 농밀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 JTBC 제공

“썸타임스 잇츠 하드 투 비 어 우먼~”(Sometimes it’s hard to be a woman~ 때때로 여자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죠)

대기업 과장인 김지선(40)씨는 프랑스 모델 겸 가수 카를라 브루니가 새롭게 부른 올드 팝송 ‘스탠드 바이 유어 맨’을 흥얼거리며 듣는 습관이 요즘 생겼다. ‘썸타임스…’ 대목을 들을 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한다. ‘스탠드 바이 유어 맨’은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예쁜 누나’)의 배경음악. 김씨는 이 노래를 감상하며 드라마 속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의 연하 연인 서준희(정해인)가 휴대폰 너머로 음악을 들려주는 듯한 상상에 빠지곤 한다.

‘예쁜 누나’ 열풍이 심상치 않다. 김씨처럼 많은 30~40대 여성들이 ‘예쁜 누나 앓이’를 하고 있다. 마초 사회에 지칠 대로 지친 여성들이 말이 통하는 다정다감한 연하남과의 사랑에서 위안을 삼고 있다.

12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예쁜 누나’는 지난 7일(4회) 방송에서 40대 여성시청자에서 5.8%(유료플랫폼 기준), 30대 여성시청자에선 3.6%의 평균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채널인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시청 환경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수치다. JTBC 관계자는 “윤진아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30~40대 미혼여성들에게 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예쁜 누나’는 이젠 흔한 소재가 된 연상녀-연하남의 사랑을 이야기 줄기로 삼는다. 외계인(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나 도깨비(드라마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색적인 사랑도 아니고, 불륜 같은 부적절한 관계로 시청자의 시선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선정적이거나 눈에 띄는 설정 없이도 여성 시청자들의 심장을 훔쳤다.

‘예쁜 누나’는 30~40대 여성들의 고민들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드라마 속 윤진아가 부딪히는 직장생활과 그의 가족관계는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윤진아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축소판인 직장과 가정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네 북’ 같은 신세다. 상사로서 책임감이나 업무능력을 찾아볼 수 없는 회사 이사와, 여직원들에게 스스럼 없이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 상사의 횡포를 참아내야 한다. 집에선 ‘스펙’ 좋은 전 남자친구를 놓쳤다며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성화 부리는 엄마를 견뎌야 한다. 회사를 가도 편치 않고, 퇴근을 해도 집에 가기 싫다. 이때 나타난 연하남 서준희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윤진아에게 “오늘 힘들었지?”라는 위로 한마디가 필요할 때 활짝 웃으며 나타나는 서준희를 보며 사회생활에 지친 30~40대 여성 시청자들도 삶의 위안을 얻는다.

직장생활 11년째인 안은진(38)씨는 “최근 세 살 많은 남성과 소개팅을 했는데 대화가 잘 되질 않더라”며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안씨는 “직장에서도 남자 상사의 업무지시와 ‘일방통행’ 화법으로 피곤한데, 그 남성분에게 나는 일방적으로 얘길 들어주는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직장이나 가정, 심지어 연인관계에서도 성불평등으로 불편한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예쁜 누나’를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금세 풀리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예쁜 누나’는 자존감을 지켜가면서 연애하고 싶은 요즘 여성들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된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남성중심적 시선이 반영된” 구원자 같은 ‘실장님’ 캐릭터는 더 이상 이 시대의 여성들이 원하는 이상형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씨는 “서준희는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더 현실적인 ‘소박한 판타지’다”라며 “실장님 같은 ‘과잉된 판타지’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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