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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란분절과 동아시아의 전통을 존중한 불교

입력
2018.08.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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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화에서는 농부가 사람의 일을 마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과 하늘의 일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풍년을 기원하는 보름 명절이 시작되는데, 6월 보름의 유두(流頭)와 7월 보름의 백중(百中) 그리고 8월 보름의 한가위가 그것이다.

유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의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준말로, 양기가 충만한 물로 머리를 감는 재계(齋戒)를 통해 풍년을 기원하는 명절이다. 백중은 1년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또 백중을 백종(百種)이라고도 하는데, 백종이란 100가지 음식이라는 의미다. 6월 보름에 풍년을 기원한 뒤, 7월 보름이 되면 이제는 서서히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백중을 불교에서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 한다. 우란분이란 인도말인 울람바나(Ullambana)를 음역한 것으로, 번역하면 ‘거꾸로 매달려 있다’라는 도현(倒懸)의 의미다. 도현은 망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을 상징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날 지옥에 떨어진 조상을 구원하는 천도의식이 베풀어진다.

아열대기후인 인도에는 우기가 있다. 이때 수행자들은 안거(安居)라는 집중수행에 돌입한다. 집중수행이 끝나는 것이 7월 보름인데, 이 수행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붓다의 제자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했다는 내용이 ‘우란분경’과 ‘목련경’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백중의 별칭 중에는 망혼일(亡魂日) 즉 ‘죽은 영혼의 날’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우란분의 의미가 불교 시대에 일반화된 부분이다.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맨이즘(manism) 즉 강력한 조상숭배에 있다. 이 조상숭배로 인해 제사와 어른을 존중하는 효 문화도 존재하게 된다. 많은 사람은 기독교나 이슬람의 동아시아 진출은 역사적으로 오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나라 때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경교)는 781년 수도인 장안에 높이 2.76m에 이르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건립한다. 즉 네스토리우스파의 중국유행을 기념하는 거대한 비석이 781년 수도에 건립되는 것이다. 또 이슬람을 믿던 위구르인들은 원나라 시대가 되면, 과학적인 지식으로 인해 몽골인 다음으로 우대받게 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이슬람을 회교라고 부르는데, 이는 회흘로 불리던 위구르족이 전파한 종교가 이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회흘의 종교인 회교=이슬람’인 셈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기독교와 이슬람의 동아시아 진출도 불교만큼은 아니지만 그 연원이 오래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때 번성하던 이들은 이후 동아시아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변화를 종교학자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아시아 전통의 조상숭배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이에 비해 불교는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 불교 안에 존재하는 효와 조상숭배 부분을 부각하는 포교전략을 구사했다. 이 부분에서 우란분절이 크게 활용되는데, 여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인도문화 역시 한몫을 담당한다. 즉 부계 중심의 남성주의 사회 속에 가려 있던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불교가 부각해낸 것이다. 또 불교의 돌아가신 분에 대한 구원범위에는 직계혈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즉 우란분절의 망자 천도의식에는 모계는 물론이거니와 유산했거나 어려서 죽은 자녀 또는 친구까지도 가능한 폭넓은 외연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부계에 한정된 동아시아 전통의 사각지대를 불교가 파고든 것이어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온다. 이로 인해 우란분절은 국가적인 명절(名節)에만 사용되는 ‘절(節)’이라는 최고의 찬사로 불리게 된다. 즉 고ㆍ중세시대의 우란분절은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위력적인 포교 코드이자 문화상품이었던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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