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09.30 04:40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데탕트 시대, 괴물 아닌 친구로 찾아온 외계인

<30>스티븐 스필버그의 ‘E.T.’

등록 : 2017.09.30 04:40

#1

냉전 이후의 화해분위기 반영

기존 SF에 없었던 새 외계인상

10년간 세계 최고 흥행작 기록

#2

‘미지와의 조우’ 등 작품 통해

음모론 영역이던 외계 접촉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도록 기여

#3

‘쥬라기 공원’ ‘마이너리티…’ 등

미래 기술의 일상 생생히 묘사

과학 수용에 막대한 영향 미쳐

‘스타 워즈’를 최고 흥행작 자리에서 끌어내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티'(1982). 아이처럼 순수하고 친근한 외계인의 상은 냉전 이후 데탕트 시대의 반영이었다. UIP 코리아 제공

인류 역사상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아바타’와 ‘타이타닉’으로 대작 흥행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제임스 카메론?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로 십 수 년째 세계적인 흥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피터 잭슨? 답은 스티븐 스필버그이다.세계 영화계에서 스필버그처럼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수의 화제작과 흥행작들을 꾸준히 생산해내고 있는 감독은 사실상 다른 예가 전무하다.

너무나 많은 작품을 내놓았고 그 장르적 스펙트럼도 넓으며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 편이기에 지금의 스필버그의 이미지는 ‘상업영화의 천재’에 가깝지만, 사실 그는 SF를 통해 과학적 사안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냉전 시대 저물자 친구가 된 외계인

1982년에 선을 보인 ‘이티(E.T.)’는 원래 스필버그나 제작사(유니버설스튜디오) 모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만든 영화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 스필버그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외계인 친구를 상상하며 지냈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접촉한 콜럼비아픽처스는 ‘디즈니 아류 같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티’는 극장에 걸리자마자 흥행 1위 자리에 오른 뒤 몇 달 간 1~2위를 오가며 계속 최상위권에 머물렀다. 개봉한 뒤 무려 반년이 지난 12월에도 흥행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더니, 해가 바뀌면서 결국은 ‘스타 워즈’를 끌어내리고 세계 영화사상 역대 흥행 1위 자리에 우뚝 섰다.

과연 이 영화가 이렇듯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설정이나 스토리가 가족 영화로서 훌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외계인’이라는 낯선 존재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뒤집어버린 영향이 크다. 그전까지 SF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괴물 아니면 사악한 침략자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우호적인 외계인이 등장한다 해도 외모나 능력 면에서 지구인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구에 혼자 낙오된 ET는 작고 우스꽝스런 체구에 천진난만한 큰 눈을 지녀 위협적이기는커녕 보호본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이 나온 80년대 초반은 70년대부터 이어져 온 국제정세의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시기이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면서 인류 종말의 전면핵전쟁이 발발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잦아들고 있었다. 50~70년대는 사회와 체제를 위협하는 외부 침략자의 모습이 SF에서 외계 괴물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인간과 같은 모습의 외계인도 냉전 시대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 워즈’에 등장하는 다스 베이더의 제국군 모습인데,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널리 입던 인민복을 착용하고 있다.

‘이티’는 이러한 국제 정세의 전환기에 전혀 새로운 외계인상을, 그것도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캐릭터로 등장시켜 ‘외계 괴물’로 고착되어 있던 성인들의 선입견을 단숨에 무장해제 시켰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SF계의 응답이었다.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어린아이와 소통하는 존재로 그려낸 영화는 ‘이티’가 처음이었다. UIP 코리아 제공

외계 지성과의 만남은 신비주의 아니다

‘이티’가 불러일으킨, ‘외계인도 친구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외계생명체를 감정이나 정서가 아닌 과학의 눈으로 대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앞서 1977년에 스필버그가 내놓은 ‘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1980년에 나온 칼 세이건의 논픽션 ‘코스모스’ TV시리즈와 함께 ‘이티’는 외계생명체가 정상과학의 진지한 대상으로 편입되도록 대중과 과학자 사회의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전까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외계생명체를 연구한다는 것은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를 꺼리는 주제였다.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외계인과 만났다며 사기와 조작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대중이 호응했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적, 신비주의적 접근이었을 뿐 과학적 접근은 아니었다. 과학자들에게는 사실상 금기시되던 주제였던 것이다.

스필버그가 10대 시절 만들었던 영화의 주제를 다시 살린 ‘미지와의 조우’는 제목부터가 과학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영어 제목인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는 원래의 뉘앙스를 살려 우리말로 옮기자면 ’(외계 존재와의) 세 번째 단계의 근접 접촉‘이 된다. UFO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접촉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 단계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UFO를 목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UFO로 인해 비정상적인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전자제품이 오작동한다거나 강렬한 빛과 열기 등을 느끼거나 기타 물리적, 화학적 이상 현상이 보고된 실례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이 영화의 내용처럼 외계에서 온 존재와 직접 만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접촉은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이라고 해서 SF에서 전통적으로 즐겨 다루는 주제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 '미지와의 조우'(1977)는 UFO와 외계생명체를 신비주의나 사기극이 아닌 진지한 과학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콜럼비아픽처스 제공

고교생 때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한 ‘미지와의 조우’를 가서 보았다. 여러 등장인물들 각각의 사연이 흘러가다 만나는 스토리라인이 있긴 했지만 UFO와 외계인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극장을 나설 때에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는 UFO의 외계우주인설 같은 것에 한창 호기심을 느낄 때였는데 잡지를 뒤져봐도 과학자들이 속 시원하게 연구해서 밝혔다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보게 된 ‘미지와의 조우’는 UFO와 외계인에 대해 비록 허구로나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묘사한 것이어서 반갑고 후련한 기분이었다.

SF.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의 신기원을 연 영화 '쥬라기 공원'(1993). 유니버설픽처스 코리아 제공

SF적 미래 전망의 교과서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사람마다 기억하는 작품이 다르다. SF 장르로만 한정시켜도 화제작들이 많다. ‘쥬라기 공원’,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 이런 작품들을 통해 스필버그가 영화산업에, 또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1993년에 발표한 ‘쥬라기 공원’은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실상 최초의 작품으로서, 실제로 찍은 듯한 생생한 공룡들의 모습은 세계 영화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전까지는 공룡을 비롯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수를 묘사할 경우 정교하게 만든 모형으로 스톱모션 촬영을 하거나 사람이 탈을 뒤집어쓰고 연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현실감이 떨어져 아무래도 몰입감이 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쥬라기 공원’은 당시의 최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해서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면서 세부 묘사도 꼼꼼한 거대 공룡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그 결과는 ‘쥬라기 공원’의 흥행 성적이 너무나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까지의 역대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세계 최고의 수입을 거둔 전설적인 흥행작이 됐다.(‘쥬라기 공원’ 이전까지 10년 넘게 세계 최고 흥행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작품은 스필버그의 ‘이티’였다.)

한편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와 ‘A.I.’(2001)는 각각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 분야의 근미래 전망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요 참고자료이다.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현실화되었을 경우 개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이나 상황이 나타나게 될지를 스필버그는 그 어떤 감독보다도 현실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데 능했다. 그래서 만년에 들어 선 스필버그가 예전만큼 SF에 뜻을 두지 않는 듯한 것이 못내 아쉽다.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A.I.'(2001)의 주인공과 함께 한 스티븐 스필버그.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스티븐 스필버그

1946년 12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정통 유태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지역의 피아니스트, 아버지는 컴퓨터 전기기술자였다. 어릴 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12세 때부터 8㎜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으며, 16세 때 아버지에게 받은 500달러를 가지고 140분 길이의 장편 SF영화를 완성한 뒤 동네 극장에서 상영해 입장료 수익으로 제작비를 전액 회수했다. 영화 공부를 하고자 남가주대(USC)에 지원했으나 고교 성적이 나빠 합격하지 못하고 롱비치의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입학했다. 대학생 때 만든 단편영화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7년간의 감독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까지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의 장기 감독 계약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전업 영화인이 된 스필버그는 TV드라마 연출을 거쳐 1975년에 ‘죠스’를 감독하면서 전설의 영화감독 자리에 오른다. 채 석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북미 극장개봉 사상 최초로 1억 달러 수입을 돌파하며 기존 최고 흥행작이었던 ‘대부’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죠스’는 ‘스타 워즈’ 전까지 세계 최고 흥행작의 지위를 지켰다. 이후 세계 영화계 신화를 써 내려가면서 대학에 복학, 55세때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에서 영화와 전자예술 학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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