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환해풍파(宦海風波)

입력
2017.06.05 15:58
0 0

우리 조상들은 벼슬살이를 환해풍파(宦海風波)라 했다. 환해(宦海)가 핵심이다. 벼슬살이를 거친 바다에 비유했으니 모진 바람과 파도를 만나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미 벼슬살이를 위태위태한 항해에 비유한 것만으로 거기엔 삼감(敬ㆍ경)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지혜의 소유자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속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소인 중의 소인, 즉 비부(鄙夫)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비루한 사람(鄙夫)과 함께 임금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얻기 전에는 그것을얻어 보려고 걱정하고,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한다. 정말로 잃을 것을 걱정할 경우에는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얻고 잃는 것이란 다름 아닌 벼슬이다. 송나라 근재지(靳裁之)라는 사람은 선비를 3등급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도리에 뜻을 둔 자는 공명(功名)이 그 마음을 얽맬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자는 부귀(富貴)가 그 마음을 얽맬 수 없고, 부귀에만 뜻을 둘 뿐인 자는 못하는 짓이 없다.’ ‘못하는 짓이 없는 사람’을 실마리로 보자면 부귀에만 뜻을 둔 바가 바로 공자가 말한 비루한 사람이다.

지금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함께 일할 인재들을 걸러내는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청문회란 인사권자가 제시한 인물을 점검하는 일이 주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지만 실은 그것은 원론일 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대신 과거의 행적을 통해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공자의 말과 근재지의 보충 발언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 크다. 청문회를 지켜보면 능력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비루한지 여부는 누구든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권자가 이런 안목을 통해 처음에 추천하고 발탁할 때부터 비루함을 인사잣대 중 하나로 삼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게다.

그러면 반대로 어떤 인재가 좋은 인재일까? 역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안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재로) 써주면 행하고 내치면 숨어 지내는 것을 오직 너하고 나만이 갖고 있구나!” 이에 자로가 물었다. “만일 스승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맨 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 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여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하고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기를 잘 하여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먼저 안회에게 한 말은 말 그대로 비루하지 않은 자의 벼슬살이에 대한 태도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임금과 백성을 위해 쓰다가 뜻이 맞지 않으면 조용히 그만둔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진퇴(進退)를 분명히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용맹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제자 자로가 자신을 지목해줄 것을 바라며 질문을 던졌는데도 공자의 대답은 싸늘했다. 삼군, 즉 군사의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용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로 자신도 ‘통솔’이라고 했다. 전장에서 총칼로 싸우는 병사야 용감해야겠지만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부에 요구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하고(臨事而懼ㆍ임사이구)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기를 잘 하여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이런 사람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벼슬살이가 모진 항해임을 받아들이고서 매사에 조심하며 비루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두루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국민의 삶의 너무 팍팍해서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