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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들만의 자성 방식

입력
2018.04.19 17:3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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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경영자의 모습이 가히 그로테스크하다. 4차 산업혁명의 첨단과 탈(脫)근대를 말하는 시대에 전근대적 인식과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기괴하게 겹쳐 있다. 배당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삼성증권이 며칠 전 자성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임원과 부서장 200여명이 한 곳에 모여 반성문을 쓰고 도덕성 재무장을 결의했다. 정직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도덕적 문제가 있는 직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모두가 반성의 뜻을 모은다는 데야 토 달수 없지만, 보도된 사진은 사태의 심각성만큼이나 섬뜩하다. 비장미를 연출했을 법 하지만 한편으론 측은해 보이기도 하다. 국민교육헌장을 뜻도 모른 채 달달 외워야 했던 우리 세대는 결의대회나 애국조회라는 집단 형식을 통해 자신의 반공심, 애국심 따위를 드러내고 승인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에나 있을 법한 ‘결의대회’를 자성의 방식으로 동원한 배후에는 어떤 인식이 있는지 의아하다. 두루 아는 것처럼, 자성(自省)이란 스스로 삼가며 살핀다는 뜻이다. 성(省)을 해자하면 작은 것(少)까지 세밀히 보는(目) 것을 말하니, 꺼리는 마음으로 지나치지 않도록 삼가는 방식이 자성에 적당할 게다. 도덕이 집단적 결의로 무장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반성의 기회마저 마케팅으로 전시하는 것 같아 불편함이 더한다.

대한항공의 ‘물벼락 갑질’사태도 일파만파다. 업무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지나쳐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넘고 말았다는 재벌 3세의 이메일 사과문은 외려 더 큰 분노를 자아냈다. 열정으로 치자면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그보다 부족할리 없다. 사과의 핵심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지당한 일이나 법의 해석과 적용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우리 사회를 감안하면 자성으로서의 사회적 의미는 낮아진다. 법률 전문가를 동원해 책임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과정이 이어질게 뻔하다. 오너 리스크에 대한 일각의 분석도 전근대성 프레임에 빠져 있다. 재벌가의 교육방식 혹은 부모의 부덕(不德), 그들이 자라온 특별한 환경,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무언가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 등이 ‘갑질’의 원인이라는 해석은 부정확하다. 비상식적 권력행사 문제에 가족과 도덕을 개입시키는 일이야 말로 지나치게 전근대적이다. 도덕 앞에서는 누구도 떳떳할 수 없다는 가정을 배경으로 삼고, 자식 교육이라는, 늘 어렵고 자신 없는 일을 감당하는 모든 부모의 소박한 심정을 파고들어 비판을 무디게 하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이 사태를 대처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갑질 행위자의 임원 선임을 제한하거나 직장 괴롭힘을 방지하는 입법 등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질문에 부치는 일이 이 사태를 사건화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경영자의 전근대적인 행태의 근본에는 기업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기업, 특히 주식회사는 준공공적 성격을 띤 사회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기업의 성과는 노동자와 소비자, 지역공동체의 노력으로 함께 만들어진다. 경영의 실패 역시 공적자금이나 실업대책 등으로 사회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공적인 것으로서의 기업이라는 인식을 획득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다. 부연할 것은,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나아가는 시대에 전근대적 요소가 겹쳐 있는 한국 경영의 모습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소위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른스트 블로흐)의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이 사태에서 드러난 지체된 인식과 거꾸로 가는 행태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라 거대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지배방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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