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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행동’이란 좌우명, 한국에서도 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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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행동’이란 좌우명, 한국에서도 통하더군요!”

입력
2017.11.1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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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거주 10년째, 우즈벡 출신 구잘씨 이야기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내에 있는 오페라 홍보관에서 포즈를 취한 구잘씨.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내에 있는 오페라 홍보관에서 포즈를 취한 구잘씨.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우즈베키스탄(우즈벡)에서 온 구잘(30)씨는 별명이 ‘행동주의자’다. 혹자는 ‘무대포’라고도 한다. 생각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2008년 유학생 자격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와서 구미에 정착해 한국어를 배울 때도 그랬다. 말은 책상에 앉아서 배우는

게 아니란 생각에 곧장 거리로 나섰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곤 했어요.버스 옆자리에 앉는 아주머니들에게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었어요. 종점까지 가면서 계속 대화 상대를 바꾸었죠.”

그 결과 지금은 한국인인지 외국인이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전화로 통화할 때는 한국인인 줄 알았다가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외국인이었어요?”하고 놀라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대학 재학시절에는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한 일은 원룸 청소였고,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뒤로는 우즈벡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이력을 살려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011년 딸이 태어나 잠시 일을 쉬다가 2013년부터 옷 장사를 시작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서 우즈벡으로 보냈다.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우즈벡 현지에서 지인을 통해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옷은 늘 아침 첫 비행기로 부쳤다. 첫 비행은 10시였고, 시장이 문을 닫는 시간은 4시였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다. 돈이 아까워 모텔 투숙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겨울엔 너무 추웠어요.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어이, 아가씨’하면서 다가올 때도 있었죠. 그러면 옷 가방을 들고 후다닥 도망쳤어요.”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좋은 시절도 잠깐이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나서 환율이 급변하는 바람에 옷 가격이 껑충 뛰어버렸다. 봄옷을 1,500만원어치나 보내놨는데 옷 판매가 중단되어버렸다.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면서 옷값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등록금에, 유치원비, 월세, 생활비까지 당장 쓸 돈도 많은데, 거기에 1,000만원 넘는 빚이 생기니까 정말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남편은 공부만 했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죠.”

너무 괴로워서 나쁜 마음을 먹었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 몸을 완전히 담갔다. 그때 딸이 악을 쓰면서 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식이 희미해졌지만 울음소리는 오히려 더 커졌다. 결국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죠. 엄마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걸요. 아이를 붙들고 한참 동안 엉엉 울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다음 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동네 커피숍에 들렀다. 거기서 눈길을 확 사로잡는 사람들을 만났다. 예쁘게 화장한 아가씨들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화장품 회사 판매직 직원들이었다. 다음 날 당장 회사를 찾아가 면접을 봤다.

판매원으로 등록한 후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했다. 화장품을 직접 사용하고 영상과 후기를 올렸고, 고객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갔다. 얼마 안 가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 속담에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뒤라서 그런지 정말 물불을 안 가리고 일했던 것 같아요. 3년이 지난 지금은 팀원 100여 명을 거느린 팀장이 됐어요, 호호! 정말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아요.”

남편도 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여유가 생겼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일 자체가 재미있어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직접 부딪쳐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제 모습이 특히 움츠러들기 쉬운 이주민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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