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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해리슨

입력
2017.02.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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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2.9

이런저런 유별난 일화와 사연을 남긴 미국 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 en.wikipedia
이런저런 유별난 일화와 사연을 남긴 미국 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 en.wikipedia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은 몇 가지 이채로운 기록으로 기억된다. 그는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태어난 미국 마지막 대통령이자, 31일의 최단기간을 재임한 대통령이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숨을 거둔 첫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대통령 선거 전략을 구사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해리슨은 1773년 2월 9일 대농장주이자 유력 정치인이던 벤저민 해리슨의 7남매 중 막내로 버지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교육은 가정교사에게 받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18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인디언 토벌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며 유명해졌고, 그 덕에 25세이던 1798년 존 애덤스 대통령에 의해 노스웨스트 준주 장관과 인디애나 준주 지사(1800~1811)를 지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그 기간에도 점령지 인디언 통치와 ‘티피카누 전투’ 등 토벌전쟁의 승리로 두툼해져 갔다.

그는 1836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에 패했지만, 4년 뒤 다시 맞섰다. 뷰런 진영은 67세의 상대적 고령인 해리슨을 “행정부 각료회의장보다는 오두막집에 앉아 사과주나 마시는 게 어울리는 고루하고 현실감각 없는 늙은이”라고 공격했다. 해리슨은 거꾸로 오두막과 사과주를 캠페인 상징으로 채택해 경기 침체기 ‘서민(common man)’의 이미지를 적극 부각함으로써 부유한 정치 엘리트 뷰런에 맞섰다. 그는 “정부 정책들은 부자를 더 부유하게, 빈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데만 동원되고 있다” “제약 없는 권력만큼 우리의 가장 고결하고 섬세한 천성을 더럽히는 것도 없다” 같은 말들을 남겼다. 뷰런 재임기 경기침체 덕이 컸지만 선거 전략도 주효. 그는 9대 대통령이 됐다.

41년 3월 4일 취임식 날은 춥고 비가 왔다. 취임 선서와 연설을 하는 동안 그는 외투도 모자도 쓰지 않았고, 마차 대신 말 안장에 앉아 퍼레이드를 했다. 게다가 그의 취임연설은 미국 헌정사상 가장 길어 2시간 가까이(8,445단어) 이어졌다. 어쩌면 그는 건재한 체력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3월 26일 병석에 누워 4월 4일 별세했다. 당시 알려진 사인은 폐렴, 훗날 밝혀진 바 장티푸스에 의한 패혈성 쇼크가 원인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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