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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도 차별 받는 여성들의 현주소

입력
2017.05.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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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살아남아,다시 붙인다'가 열리는 가운데 믿는페미의 활동가가 현장의 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살아남아,다시 붙인다'가 열리는 가운데 믿는페미의 활동가가 현장의 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애통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이 땅에 태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죽임당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중략) 나는 당신께 고발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지난 11일 저녁 7시30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살아남아, 다시 붙인다’가 열렸다. 이번 추모 예배는 교회 안의 여성주의 운동 단체 믿는페미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여성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렸다. 1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예배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의 희생자뿐만 아니라 차별받고 억압받은 여성들을 위한 추모와 기도로 이어졌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예배는 참석자들이 기도판에 자신의 기도를 붙이고 빵을 포도주에 찍어 나눠 먹는 성찬 나눔과 찬송으로 마무리됐다.

믿는페미는 ‘더께더께’, ‘달밤’, ‘오스칼네 고양이’(이하 오스칼)라는 필명을 쓰는 3명의 여성 기독교인이 만든 모임으로, 이들은 모두 기독교가 모태신앙이다.

기독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활동했던 더께더께(27)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기독시민단체 활동가로 활동중인 달밤(33),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는 오스칼(30)은 예전부터 함께 반여성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주류 교회조직에 대한 문제의식을 쌓아가다 지난달부터 ‘믿는페미’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 여성주의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에서 참석자들이 성찬 나눔을 진행했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에서 참석자들이 성찬 나눔을 진행했다.

가족중심적이고 성 역할 구분 엄격한 교회, 여성들을 밀어내다

20~30년간 교회 공동체에서 살아온 이들 세 사람은 가족중심적인 교회가 비혼,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성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여성들을 주변부로 밀어낸다고 비판했다.

이날 행사에서 만난 더께더께는 “교회에서는 어른들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다 보니 이들과 연결고리가 없는 비혼 청년은 주체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혼을 기준으로 청년부에서 장년부로 공동체가 바뀌는 교회의 분위기도 비혼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을 교회가 강조하다 보니 결혼적령기를 넘어서도 비혼 상태인 청년은 공동체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진다”며 “때문에 비혼인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장로, 목사는 대부분 남성이 맡는 등 성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돼 여성이 주체성을 가질 수 없는 남성중심적 위계질서도 문제로 지적됐다. 오스칼은 “부엌일은 당연히 여 선교회 소속 여성 신도들이 하고, 교회 행사 때마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신도들이 서비스해야 한다는 게 뿌리깊게 박혀있다”며 “신학생일 때에도 여성에게는 목사 안수를 해 주지 않고, 여성 전도사는 청년부 이상을 맡지 못하는 등 여성 목회자가 배제되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참석자들이 기도판에 붙인 추모글.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참석자들이 기도판에 붙인 추모글.

목사의 여성혐오적 설교, 비판 통로가 없다

여기에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라는 교계의 기본 인식이 여성 신자들을 끊임없이 움츠러들게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달밤은 “수련회를 가면 교회에서 ‘옷을 단정히 입어서 남성들을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라’라며 여름인데도 긴 옷을 챙겨달라고 당부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누군가를 미혹시킬 수 있는 존재구나, 그래서 내가 조심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학습된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교계의 여성차별과 배제에 대한 비판이 통용되지 않는 구조라는 점이다. 달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룩한 질서에 도전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했다. 더께더께는 “목사의 여성혐오적 설교에 그 자리에서 반박하지 못하고 다른 목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도 묵살됐던 경험이 있다. 잘못된 설교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공식적인 채널이 전혀 없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도 참여…퀴어들과 연대하는 교회 꿈꾼다”

그래서일까. 지난 3월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 이들이 ‘믿는페미’의 활동 개시를 알리자 교회 내 여성 억압에 지친 신도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본격적인 활동 시작 전부터 ‘교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부터 ‘성서 해석을 전복적으로 해 보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견까지 밀려들어왔다.

믿는페미는 일부 보수 대형 교회들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소수자 차별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퀴어들과 연대하는 교회들과 예전부터 뜻을 같이했다”는 믿는페미는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참여하고 지난 달 27일 열린 동성애자 육우당의 추모기도회에도 참석했다. 달밤은 “믿는페미의 출범 소식에 ‘동성애까지 품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려왔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행동을 보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한 달의 한 번 페미니즘 도서를 읽는 독서모임을 이어가고 웹진을 출판하는 믿는페미는 조만간 팟캐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은 “우리의 활동을 통해 많은 신도들이 자신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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