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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北 선물 보따리와 레드라인

입력
2017.07.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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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화성-14형’ 대륙간탄도로켓(ICBM) 발사 현장을 참관한 뒤 했다는 발언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해 했을 것”이라며 발사 성공에 크게 만족해 했다. 이어진 다음 말이 시쳇말로 골 때린다. “독립절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은데 앞으로도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

▦ 북한이 미국독립기념일인 4일에 맞춰 장거리로켓 발사 등 대형 도발을 한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좀 다르다.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ICBM 개발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잠정적으로 설정한 레드라인으로 알려져 왔다. 조선중앙통신은 화성-14형 시험발사가 “새로 개발한 대형 중량의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ICBM 기술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성공”이라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와 우리 국방부도 화성-14형을 ICBM으로 공식 평가했다. 김정은은 이 레드라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를 자주 보내겠다니 황당하다.

▦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북한이 한미정상이 합의한 평화적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호응하지 않고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방한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 바란다”면서 한 얘기다. 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 그리고 트럼프 정부가 새로 설정할 레드라인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김정은이 앞으로 보내겠다는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 중 하나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을 무한정 용인할 수는 없다. 레드라인이나 마지노선과 같은 저지선을 치고 막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30년에 걸친 북 핵ㆍ미사일 개발 저지 씨름에서 공식ㆍ비공식 레드라인이 여러 번 설정됐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우리 인구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권이 사실상 볼모로 잡혀 있고 중국 변수 등 본질적 한계 탓이다. 사실 레드라인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게 지혜로운 일도 아니다. 금지선을 넘어섰는 데도 별 대응을 못하면 꼴만 우스워지기 때문이다. 실속 없는 레드라인 말고 정말로 북핵ㆍ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다른 색깔의 라인은 없을까.

이계성 논설실장

4일 쌍안경으로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연합
4일 쌍안경으로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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