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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美 외교 정책의 방향

입력
2015.10.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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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근 이슬람국가(IS) 대응에 대한 유엔 발언에 대해 그에게 비판적인 많은 이들은 외교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는 반면 무력을 충분히 쓰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과 비교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이 박차를 가하면서 몇몇 공화당 후보자들은 오바마의 이런 고립주의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들은 정책 분석으로는 근거가 희박하고 정치적 발언으로서도 편파적이다. 현재의 분위기는 스티븐 세스타노비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말한 것처럼 미국 외교정책이 “확대”와 “억제”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억제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전략적 목표와 수단을 조정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억제 정책을 따른 대통령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그리고 현재의 오바마다. 객관적인 역사가라면 이들 중 누구라도 고립주의자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 유력했던 로버트 태프트의 고립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1952년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닉슨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여겼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 원조를 격렬히 반대했던 1930년대의 진짜 고립주의자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모두 열렬한 국제주의자들이었다.

확대 정책을 펴며 과잉 대응하던 시기에 억제 정책을 펴던 시기보다 세계 속 미국의 위상에 더 많은 피해가 생겼다는 걸 역사가들은 쉽게 입증할 수 있다. 우드로 윌슨의 세계적인 이상주의에 대한 미국 정치계의 부정적 반응으로 극심한 고립주의가 생겨났고 그 결과 히틀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늦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 집권 당시 베트남전쟁을 단계적으로 확대한 결과 1970년대의 자기성찰적 전환이 이뤄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판단 잘못인 이라크 공격으로 현재의 억제 정책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선거 운동 초기인 지금의 수사들에서 엿보이는 분위기가 2016년 미 대선 공약의 쟁점이 될 수 있다면, 미국인들은 지금이라도 고립주의에 대한 잘못된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 대신 미국 외교정책의 미래에 관해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쓸 것인가? 얼마나 간섭할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다각적일 것인가?

첫 번째 질문은 미국이 국방과 외교정책에 얼마나 지출해야 하는지 묻는다. 몇몇은 미국이 이 분야에서 경비를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GDP 대비 미국은 냉전기 최대치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을 쓰고 있다. 그때는 미국의 지도력이 확고해지던 때였다.

문제는 ‘무기 대 버터’(방위비 투자와 상품생산 투자의 배분을 가리키는 거시경제학 이론)가 아니라 ‘무기 대 버터 대 세금’이다. 세입을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없다면 국방비 지출은 교육, 사회 공공기반시설, 그리고 연구개발과 같은 중요한 투자들과 제로섬 거래만 하게 될 것이다. 미국 내부의 힘을 키우고 국제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데 모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들이다.

두 번째 질문은 미국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이나 동맹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라도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양심상 미국이 움직여야 한다고 느끼더라도, 예를 들어 독재자가 수많은 시민을 살해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미국은 단독으로 개입해선 안 되고 무력도 성공할 가능성이 클 때만 써야 한다.

합리적인 원칙들이지만 이를 지켜낼 수 있는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이는 최근 생긴 문제가 아니다. 거의 2세기 전 미국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그리스 독립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와 씨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국은 무찌를 괴물을 찾으러 해외로 가지 않는다.” 시리아 내전 같은 상황을 참고 넘어간 결과 IS와 같은 테러집단이 안전한 안식처를 만들게 된다면 어쩔 것인가.

미국은 침략과 점령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민족주의의 시대, 사회적 인구이동의 시대에 대외 점령은 아이젠하워가 1950년대에 현명하게 결론지은 것처럼 반드시 분노심을 낳게 된다. 하지만 무엇이 그 빈 자리를 메울 것인가. 공군력과 외국군 훈련은 충분한가. 특히 혁명이 한 세대 내내 이어지는 중동에선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똑똑하게 결합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미국 대선 후보의 최근 연설들은 앞의 두 질문에 관한 논쟁이 이미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은 위험에 빠진 세 번째 질문을 무시한다. 미국은 어떻게 제도를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며, 초국가적 문제들 관리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의 지도력은 지구적인 공공재 생산에 중요하다. 불행히도 미국 국내의 정치적 교착상태가 종종 이를 방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상원은 유엔 해양법협약이 미국 국익에 중요한데도 이를 비준하지 못했다. 실제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이롭게 풀어 가려면 미국은 이 협약이 필요하다.

비슷하게 미국 의회는 IMF에서 신흥국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하도록 지지해야 하는 미국의 책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데 비용이 별로 들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결국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출범하도록 길을 터준 꼴이 됐다(당시 미국은 이를 막으려는 잘못된 노력을 하다 국제적 명성에 큰 금이 갔다). 12월 열리는 파리 국제기후변화회의를 준비하며 탄소배출 한계를 정하는 데도 미국 의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외교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다른 나라의 위기 상황에 어떻게 간섭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자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가 ‘면제주의(exemptionalism)’로 변질되고 있다는 데도 똑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미 의회를 국제협력 방해 단체로 본다면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나. 논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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