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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반기문의 ‘정권교체’와 ‘정치교체’

입력
2017.01.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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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정국에 몰고 올 영향에 대한 판단은 아직 ‘유보’다. 그는 귀국 일성으로 ‘화합과 통합’을 언급했고, 귀국 다음 날 역대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진영을 뛰어넘는 행보를 의식했음 직하다. 사드(THAAD) 배치를 지지하고, 광장의 촛불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두 사안이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기존 진영의 관점에서 볼 때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이미지 구축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도자의 실패가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간다”고 비판하는 한편, 그를 ‘국가원수’로 표현하면서 ‘기회 봐서 전화 드리겠다’고도 했다. 꼭 박 대통령을 언급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지만 외교에 요구되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별명인 ‘기름장어’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반 전 총장은 기성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통해 문재인 전 대표와 대척되는 진영의 선두에 서려 할 것이다. 한국정치를 패권지대와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패권 대 비패권의 구도로 프레임화하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의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는 발언은 그 연장에서 나온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이익을 표출하고, 갈등과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각 부문과 계급적 이해관계의 최대공약수를 도출해내는 작업이 정치다. 지금의 정치는 그 본령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서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도 고쳐야 하고, 과소 대표되는 계층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비례대표제도 확대되어야 한다. 사정 권력기관의 장에 대한 민의 통제가 확립되어야 함은 물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을 끊기 위한 입법도 필요하다. 권력집중의 혁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교체’는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세력이 추동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 위임 받는 정치세력, 즉 정권의 교체가 필요하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정권의 정체성은 결정적이다. 최종 선택은 시민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공화정’의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선택한 정치세력인 ‘정권’을 교체하지 않는다는 건 박근혜 정권과 그의 전신인 이명박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정치세력을 계승하겠다는 명시적 천명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정권과는 분명하게 다른 정체성이 담보돼야 그나마 적폐를 광정(匡正)할 수 있는 단초라도 열 수 있다. 중도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기계적 균형이 아니다. 정치교체를 위해서는 정권 담지 세력이 바뀌어야 한다. 정권교체가 정치교체보다 더 핵심 키워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며, 정치교체가 추상적으로 들리는 소이(所以)이기도 하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적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미 군정과 이후 자유당의 독재가 공화당의 권위주의와 유신으로 이어졌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시대의 망령들이 배회하며, 헌정사상 전대미문의 사태를 불렀다. 기득권에 집착하고 시류에 편승한 세력들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변장·미화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가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를 넘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 전 총장은 왜 정권교체를 주장하지 않는 걸까. 그 해답은 그의 향후 행보에서 찾아질 것이다.

끊임없는 은폐와 교란으로 일관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의 행태에서 현대판 난신적자(亂臣賊子)의 잔영을 본다.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냉전 반공주의적 사고는 몰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수구와 조응하면서 좀비의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퇴진만으로는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과 유신의 망령을 거둬낼 수 없다. 사회구조는 제도적 혁신과 구성원의 의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지난(至難)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은 그 험한 여정을 모색하는 국민주권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교체’보다 역시 ‘정권교체’가 중요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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