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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내 안의 나쁨을 이야기하기 위해

입력
2017.10.17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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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후 작가 김사과는 줄곧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 그 나쁨의 매혹과 저항을 써왔다. 문학동네 제공
등단 후 작가 김사과는 줄곧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 그 나쁨의 매혹과 저항을 써왔다. 문학동네 제공

나쁨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대개 그것과 마주보는 일로 시작한다. 나는 나의 자리에 있고 나쁨은 반대편에 놓인다. 덕분에 나쁨은 아주 잘 보이고 나는 그 나쁨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비판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나쁨과 손쉽게 분리된다. 나는 나, 나쁨은 나쁨.

그런데 김사과가 해온 방식은 다르다. 등단 이후 작가에게 나쁨은 줄곧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였는데 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한낮의 여름 백화점에 들어섰을 때와 비슷한 것처럼 이해된다. 우선 서늘한 냉기와 잘 진열된 상품들로부터 쾌적함을 느낀다. 그러나 곧 상품들이 뿜어내는 과도한 아우라에 역겨움을 느낀다. 요컨대 나쁨 안에 내가 있으며, 이에 매혹되는 한편 저항감을 느낀다는 것.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는 “나는 아무것도 넘어서지 못했고, 결국 아무데도 닿지 못했다. 지도를 버렸지만 여전히 지도 안에 들어 있었다. 지도 위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나는 그들을, 아니 우리를 저주했다”(‘더 나쁜 쪽으로’)라는 차분한 이야기로 문을 연 뒤, 점차 소설에 기대하는 어떤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흘러간다.

“딸!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이놈 저놈 만나고 다니면 안 된다고. 그런 nobody from who-the-hell-gives-a-shit, 너는 어떻게 매번 그토록 nasty하고 obnoxious, frightening한 남자… Look honey, 너를 보는 엄마의 심정, 기껏 투자해놨더니 재건축이 반려된 아파트 단지 같다는 생각이… 들겠니 안 들겠니?”(‘지도와 인간’)

해결되기도 전에 흔한 담론이 되어 뒤편으로 사라진 문제들이 극단적인 형식(일부가 아닌 한 편이 이런 식으로 구성돼 있다)을 통해 심각성을 되찾는다. 한국어와 영어, 교육 문제와 투기 문제가 위계 없이 뒤섞일 때, 이 진술의 의미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일은 무색해진다. 그저 제대로 듣고 충실히 반응하는 일만이 남는데 그런 점에서 글이 아니라 목소리라고 이해하는 편이 낫다.

김사과는 한 산문에서 “상이란 대개 멍청이가 만든 유행 타는 공산품이나 대가의 변변찮은 범작에 주어지는 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을 문학상의 후보로 올린다. “더 나쁜 쪽으로”는 희망이나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그저 세계의 운동 방향을 가리킬 뿐임을 아는 작가이기에.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혐오 범죄의 발생 과정을 목소리로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래서 여자들이 싫다. 그들은 눈치가 빠르다. 그리고 눈치를 챈 티를 낸다. 온몸으로, 마치 피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처럼. (…) 확실히 그녀는 망가져버렸다. 외모가 망가졌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리고 그 정신적인 타락이 외면에 배어나 있었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자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상황이 이상적이었다면, 나는 여자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었으리라. 최상의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내 X이다.”(‘카레가 있는 책상’)

황예인 문학평론가 출판사 스위밍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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