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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추천 꽃바구니도 선물 받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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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추천 꽃바구니도 선물 받는 느낌”

입력
2017.03.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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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박스는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함께 마술, 프라모델, 레고, 드론, 가구 리폼 등 다양한 분야의 취미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달해준다. 하비박스 제공
하비박스는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함께 마술, 프라모델, 레고, 드론, 가구 리폼 등 다양한 분야의 취미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달해준다. 하비박스 제공

#1 회사원 김보람(28)씨의 스마트폰 첫 화면에는 배달서비스 앱이 모여 있다. 김씨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푸드플라이 등의 단골 고객이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혼자 사는 데다 매일 야근하느라 직접 장 보러 갈 시간이 없어 배달 앱을 자주 이용한다. 직접 만들어 먹을 때는 2인분씩 음식 재료를 배달해 주는 업체를 이용한다. 이번 주에는 새우로제파스타를 해먹을 생각이다. 요리가 귀찮아지면 음식배달 전문 앱을 이용해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음식을 시켜 먹는다. 김씨는 “혼자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싫고, 편의점 간편식도 질릴 때는 배달 서비스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2 한의대생인 이한림(29)씨는 요즘 ‘내가 힐링할 수 있는 취미는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릴 땐 프라모델 조립도 했고 레고도 좋아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 한의대에 진학했지만 스트레스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학업량도 만만치 않았고 위계질서가 뚜렷한 학교 내 인간관계도 어려웠다. 그는 “쉴 때라도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즐길 만한 취미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어 취미 배송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배달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배달 서비스는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부터 삶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배달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삶의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1인가구가 급격히 늘면서다. 이들은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비경제적인 활동이란 걸 깨달았고, 정서적인 도움을 줄 누군가의 손길도 필요했다.

2010년은 국내 첫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통’이 등장하고, 후발 주자인 ‘배달의 민족’이 서비스를 시작한 해다. 공교롭게도 1인가구 수가 4인가구 수를 처음으로 추월한 게 이때다. 1인가구가 4인가구 숫자를 멀리 따돌리는 사이 배달 서비스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2015년 우리나라 1인가구는 520만으로 전체 가구의 27%였다. 2인가구를 합치면 53%로 절반이 넘는다.

한국은 배달 시장이 활성화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 1,2인가구의 급속한 증가, 심야문화의 정착, 야근이 일상화된 기업 문화, 식당 자영업자 간의 치열한 경쟁 등이 결합된 결과다. 특히 취업난에 시달리는 20,30대 1인가구는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이 귀찮으면서도 고비용이 드는 일이다.

와이즈앱이 지난 2월 한달간 국내 배달 앱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사용자 중 20,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69.5%에 달했다.

1인가구의 증가는 취향의 배달로 이어졌다.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여가활동, 삶의 질 향상 조차 배달로 해결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정해준 빽빽한 일정에 따르느라 자아를 찾을 여유가 없었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는 취미거리를 배달시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각자의 성향에 맞는 취미를 찾아주고 취미로 즐길 만한 상품을 상세한 안내와 함께 보내주는 하비박스를 창업한 도현아 대표는 “취미 없이 삭막한 일상을 살아가는 20, 30대가 주요 고객”이라며 “자신에게 취미를 선물로 주고 싶다는 뜻으로 정기 배송 서비스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한 꽃을 정기배송 받는 것은 단순한 상품 배송이 아니라 감성을 전달받는 것과 같다. 꽃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업체 에이치블랑의 꽃다발.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한 꽃을 정기배송 받는 것은 단순한 상품 배송이 아니라 감성을 전달받는 것과 같다. 꽃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업체 에이치블랑의 꽃다발.

취미 용품 배달 서비스는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특히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한 꽃다발, 전문가들이 큐레이션한 취미용품, 빅데이터가 추천한 책을 받는 것은 단순한 배달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배달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 이상의 것을 받았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원하는 제품을 지정해 배송 받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꽃 구독’을 이용하는 직장인 차수진(34)씨는 “꽃을 좋아하지만 종류도 잘 모르고 어떻게 디자인할지도 몰라서 정기배송을 받기 시작했다”며 “전문가가 디자인해준 꽃을 배송 받으면 왠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5만원 정도가 드는데 회사 일과 가사에 지친 마음이 치유된다”고 덧붙였다.

큐레이션 배달은 정보 배달이기도 하고 정서의 배달이기도 하다. 회사원 정재건(41)씨는 “평소 드론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던 차에 전문가가 초보용 패키지를 구성해 보내준다는 말에 정기 배송을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플라이북을 통해 책을 정기 배송받는 박소연(27)씨는 “매달 책을 선물받는 기분이 들면 좋을 것 같아 1년 구독을 결정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책도 마음에 들지만 독서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까지 안내해주는 서비스 등이 좋았다”고 말했다.

배달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단순히 편리를 추구하는 세태로 읽을 필요는 없다. 학교나 직장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다면 집안에서만큼은 누군가 수고를 대신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정된 시간에 삶의 질을 높이고 더 많은 걸 누리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배달이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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