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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직을 걸고 민심 받드는 이 나와야

입력
2016.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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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청와대의 두 오찬이 화제에 올랐다. 이정현 새누리당 새 대표를 환영하는 오찬에는 호화 메뉴가,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들에게 점심을 대접할 때는 평범한 중식이 나왔다. 독립유공자에게 캐비어 송로버섯을 대접했다면 뒷말이 없었을 일이다. 무얼 먹었느냐는 보기에 따라 작은 사안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중식과 호화 음식은 그러잖아도 먼 청와대와 국민의 거리를 상징하는 ‘메뉴’가 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 수석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부패한 언론의 권력 흔들기에 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 수석을 자르든 그렇지 않든 임기 말 권력누수인 레임덕은 막을 수 없고, 그렇다면 사태의 본질인 언론이 권력을 흔드는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겠다는 게 청와대 판단이다. 막 시작한 검찰 수사가 청와대가 원하는 본질을 일부 밝혀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이 그런 관행을 고쳐낼지 의문이고, 남은 시간이 많지도 않다. 특수통 검찰 인사가 “지금 나온 의혹만 가지고도 계좌를 까는 순간 우병우는 구속될 수밖에 없다”고 한 예상처럼 사건이 어디로 튈지 알 수도 없다.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은 계좌 추적이 되자마자 5개월의 진실 공방이 끝났다. 청와대로선 어느 경우이든,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말대로 이기고도 지는, 상처뿐인 ‘피로스의 승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청와대가 말하는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하도 말이 많아 알 수조차 없다. ‘검찰총장이 외로웠다고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우 수석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말도 국회 주변에 퍼져 있다. 우 수석과 청와대 실세 A가 검찰수사로 대립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이번 사태가 터졌다는 극단적 얘기까지 있다. 지난 6월 27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묻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답변한 내용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를 위해 청와대 고위인사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 밝혔다. 그런데 파장을 우려해 덮고 있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금품을 받은 청와대 인사는 ○○○ 전 홍보수석, 그리고 청와대 A라는데 전혀 들어본 적 없습니까.” “들어본 적 없습니다.”

청와대는 우 수석을 사퇴시키는 것은 처음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만큼 부당하다고 하지만, 의혹은 이미 한군데에 머물러 있지 않다. 별건 의혹 제기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별건 수사는 우 수석이 검사 때 즐겨 쓰던 수사 수법이다. 김영삼 정부를 식물정권으로 만든 차남 현철씨 사건도 한보 특혜대출 비리 의혹에서 시작해 대선잔금 문제로 번졌다. 현철씨와 한보그룹 비리의 연결고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여론에 내줘야 했다.

되풀이 확인되는 건 민심 이반이고, 이반되는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청와대의 모습이다. 청와대가 민심을 알려는 노력보다, 민심이 청와대의 판단 배경이나 심기를 파악하려는 수고가 훨씬 더 커 보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가 회자되고, 무언가 자꾸 뒤집히는 데서 오는 국민 갑갑증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민심을 전달하는 창구는 민정수석실과 국가정보원 국내 파트, 법무부 등일 텐데 그 창구는 인의 장막에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청와대 비서실이라도 나서야겠지만 역대 비서실장들의 공통된 하소연이 ‘만날 수가 있어야지’인 걸 보면, 이마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불통구조를 핑계 삼았을지언정, 이제는 그런 하소연으로 끝낼 시점이 아닌 듯싶다. 층위를 달리 해야 할 판단이 뒤섞여 민심과 반대로 갈 때, 더구나 그 사안이 중한 것이라면 누군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은 직을 걸고 민심을 받들려는 이가 나와야 할 때다.

이태규 정치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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