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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ㆍ담] “비핵화 협상은 인내가 필요… 서두르다간 핵폐기 물거품 될 수도”

입력
2018.03.08 19:02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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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폐기 직전 단계인

핵 동결부터 치중해야

시간벌기 의구심 들지만

北 핵보유 자신감 발로일 수도

‘한미훈련 이해’ 밝힌 건

美의 거부감 완화 위한 의도

김정은 입장 너무나 예상 밖

정상회담서 깜짝결과 가능성

북핵 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이수혁(왼쪽) 의원과 본보 이계성 논설고문이 7일 한국일보 인터뷰실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 전망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북핵 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이수혁(왼쪽) 의원과 본보 이계성 논설고문이 7일 한국일보 인터뷰실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 전망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평창 평화올림픽 이후 상황이 긴박하다. 파격적 방식으로 남한 특사단을 맞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보장 시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과 비핵화 대화 용의도 밝혔다.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점도 예상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평가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핵심인 비핵화 협상의 지난한 과정을 생각하면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 초기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맡아 2년간 북한과 힘든 씨름을 했던 이수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비핵화 협상은 인내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조급하게 하다 협상이 깨져버리면 영영 평화적 핵 폐기 기회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_방북 특사단이 가져온 보따리가 기대 이상이다. 놀랍다거나 역사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출해오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기대를 표시했고, 세계 주요 언론들은 중대한 반전, 획기적 이정표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방북 결과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혼란을 넘어서 현란하다고 생각했다. 4월 말 정상회담이면 두 달도 안 남았고 장소도 판문점 남측이다. 북한이 평양을 고수하지 않은 점도 중요한 메시지다. 흥미롭고 의미가 담긴 장소 선택이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고 한 것도 지금까지 북한의 입장에 비춰 많이 진전된 것이다. 믿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너무 예상 밖이다. 4월 정상회담에서도 놀랄 만한 게 나올지도 모른다.”

_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은 위장평화다, 시간 벌기다 하면서 강한 의구심을 표출한다. 너무 들뜨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북한의 행태 탓이다. 잘 되는 듯 하다가 합의를 한 순간에 깨버리고 핵 개발을 계속 하는 반복된 약속 파기 경험에 비춰 그런 우려는 당연하다. 한편으론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완성해서 저렇게 자신 있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을 상기시키면서 군사적 위협과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은 큰 변화다. 집권 후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세우고, 핵·미사일 개발에 매진해온 그다. 헌법에도 핵보유국을 명시해놓은 상태다. 김정일 시대에는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지만 김정은은 처음이다. 더구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리비아 가다피가 비참한 말로를 맞은 것을 반면교사 삼아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 의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2011년에 펴낸 ‘북한은 현실이다’란 저서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등 3가지 가설을 뼈대로 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정은이 선제적으로 대남, 대미 대화에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은 핵을 이미 완성했다는 여유감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핵을 만드는 데만 몰두했는데 그 단계를 넘어섰으니 이걸 어떻게 쓰지? 하고 고민하는 단계라고 본다. 조커를 들고 그걸 외교에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폐기하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닐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완성 단계가 아니라는 얘기를 할 필요가 이제는 없다. 핵실험 더 하라는 얘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마당이니 그랬냐고 하고 다음 단계 협상으로 가자고 하면 된다.”

_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동결이 중요하다. 핵 폐기 목표에만 집중해 동결은 하찮고 쉬울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6자회담 실패는 동결 리스트 작성에 실패한 것이다. 시설, 물질, 소재지, 양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봉인하고 카메라로 감시하는 게 동결이다. 그 리스트 작성하다 문제가 불거져 중단했다. 지금은 핵무기도 있고 농축우라늄 시설도 있다. 이것들을 모두 밝혀서 그걸 봉인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일까. 동결은 사실상의 폐기 직전 단계다. 그걸로 되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_북한은 특사단에 연례적인 한미군사훈련은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훈련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일종의 꾀로 볼 수도 있다. 한미 훈련을 걸고 넘어지면 미국이 대화에 부정적으로 나올 테니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과거에도 말로만 비난했지 훈련을 강행해도 별 거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전략자산을 대규모로 전개한 상태에서 한미 군사 훈련을 하다가 기회를 봐서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클 수 있다. 코피작전(제한적 북한 군사시설 공격)이나 김정은 지도부에 대한 참수 공격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의 생각은 좀 달랐다.

“내 경험으로 북한은 미국이 군사작전을 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대응일 뿐이다. 이번 군사훈련 양해는 미국의 거부감이나 우려를 완화시켜 한국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평창 올림픽을 활용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낸 것이고, 그런 국면을 유지해 가기 위해 북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대북 지원의 경우도 학습 효과가 있어서 돈다발을 주는 일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_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탈북자 면담 등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에 기반한 북한 체제 속성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하는 인권은 개인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 제기는 집단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북 체제를 부정하는 게 될 수도 있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인권 문제 제기가 내정 간섭이며 유엔헌장 위배라고 본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인권 문제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가시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권 상황이 열악한 중국 요소도 있다. 이웃 중국이 그러한데 우리만 따지느냐고 반발하고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면 미국이 끝까지 인권 문제를 물고 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_4월 말이면 채 두 달이 안 된다. 그 기간에 북미 대화에서 핵 문제 진전이 있기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구체적인 지원이나 교류협력 합의가 나와야 하는데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압박 틀이 깨진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엔안보리 조치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방법들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북한의 전략가라면 남북간에 꼭 필요한 일들을 안보리 때문에 못한다면 그걸 해소해 줘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이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북한이 만들어줘야 할 것이고, 그걸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 초보적인 조치이더라도 어쨌든 제재 해제는 남북이 논의할 게 아니라 북미 협상에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_그래도 3차 정상회담이 잘 될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 성격으로 봐서 잘 될 거다. 그의 표정이나 말에는 독이 없다. 언행이 합리적이고 양보할 것 같은 인상도 주고, 최소한 뒤통수 치지는 않을 거라는 신뢰감을 준다. 말이 어눌할지 몰라도 핵심 문제를 갖고 이야기 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과거 정상회담 못지 않게 의미 있는 실질적인 협상될 것이다. 다만 노련한 핵 협상 전문가들이 외교안보팀에 부족한 게 걱정스럽다.”

_김정은의 선제적 대화 공세가 제재 완화와 시간 벌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핵이 없다면 시간 벌기일 수 있지만, 그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 이유라는 게 있을 수 있나. 동결ㆍ사찰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화를 하든 안 하든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동결이 중요한 것이다.”

이 의원은 대담 말미에 비핵화 협상에서 인내와 지혜를 누누이 강조했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소 간 전략무기 감축 협상이 10년 가까이 걸렸던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조급하게 하다 협상이 깨져버리면 영영 핵 폐기할 기회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면 통일도 어렵다.” 문제는 과연 우리 국민이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조언에 귀를 기울지이다. /대담 이계성 논설고문, 정리 김범수 논설위원

평소 “北 현실을 먼저 파악ㆍ인정하자” 주장

[이수혁 의원은 누구]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이 주도하는 ‘한국외교안보포럼’은 12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대토론회를 갖는다. ‘북핵 협상은 현실이다_ 남북협상과 북미협상의 이중트랙이 갖는 의미’가 주제다. 2개월 전에 기획했지만 최근 방북 특사단이 가져온 한반도 대반전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지난해 12월 창립한 포럼에는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국회의원 40명과 전직 외교관, 교수 등 관련 전문가 42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는 북한, 미국, 중국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한다.

이 의원은 지난 연말 ‘북핵은 현실이다’라는 제목의 의정보고서 소책자를 발간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이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북핵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진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본질을 묻고 해법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은 주독일 대사와 국정원 1차장(해외 담당)으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재직 시절 경험과 통찰을 담아 2011년 ‘북한은 현실이다’는 책을 냈다. ①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②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③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등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입증을 시도한 책이다.

그는 1975년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부에 들어간 뒤 대통령 외교통상비서관, 구주국장, 차관보를 역임했다.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제네바 4자회담에 참여했고, 노무현 정부 들어 차관보로서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로 2년 간 북핵 협상 최전선에 섰다. 이 의원은 북한에 대해 잇따라 ‘현실이다’ 시리즈를 내고 있다. 북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북 핵·미사일 등 ‘현실’을 풀어갈 수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이 간다. / 이계성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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