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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6.11.29 11:25
수정 : 2016.11.29 13:41

[이정모 칼럼] 사이다 발언

등록 : 2016.11.29 11:25
수정 : 2016.11.29 13:41

지난 5일 대구 중구 동성로 2.28공원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1차 대구시국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박근혜씨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1,500명 가량이 ‘정권퇴진 시국대회’에 참여했다.

이날 자유발언대에 올랐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박근혜씨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고서는 “박근혜씨야말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본질이며 최순실씨는 이 모든 사건의 포문을 여는 게이트”라며 “박 대통령은 국민 주권자가 부여한 권력을 사사로운 감정에 허락 없이 남발했다. 이제 책임을 질 차례”라고 단언했다.

요즘이야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수만명씩 모이는 일이 주말 행사가 되었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지방에서 1,000명 이상이 모여 집회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는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이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이 학생의 발언은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학생의 발언은 유튜브에서 ‘대구 여고생 사이다 발언’이란 제목으로 찾아볼 수 있다.

사이다는 이젠 명사가 아니라 통쾌하다는 뜻의 형용사로 쓰이는 것 같다. 삶은 계란이나 밤고구마를 먹고 목 메일 때 사이다 마시면 뻥 뚫리는 것처럼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세상에 속 시원한 해결사가 나타나거나 일침을 날리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을 사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모두 가난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사는 집이라고 해도 전기밥솥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서로의 형편을 눈치채는 날이 있으니 바로 소풍날이다. 소풍날 사이다를 싸오는 아이는 그나마 조금 사는 집 아이인 것이다. 정식으로 판매되는 칠성사이다보다는 소풍 때만 등장하던 소주병 사이다가 훨씬 많기는 했다. 배낭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린 사이다 병을 조심스럽게 따면 거품이 올라온다. 당연히 사이다 병의 주인이 입을 대고 거품을 마신다. 그 다음에는 친한 순서대로 한 모금씩 돌려 마시는 게 순서다. 그 달콤하면서도 짜릿함이란 엄마가 싸준 김밥 모두와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사이다란 칠성사이다처럼 초록색 병에 들어 있는 무색 투명한 탄산음료를 말하는 ‘우리말’이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통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양에 가서 사이다를 달라고 하면 사과 주스나 따뜻한 사과차를 준다. 사이다를 마시고 싶으면 세븐업이나 스프라이트 같은 상표를 말하든지 레모네이드라고 말해야 한다.

레모네이드는 레몬-라임에서 왔다. 여기서 라임(lime)은 석회(石灰)를 말한다. 화학자들이 말하는 탄산칼슘이 바로 그것으로 염기성 물질이다. 레몬은 신맛이 난다. 산성이라는 뜻이다. 산성 물질과 염기성 물질이 만나면 중성의 물이 되고 탄산이 남는다. 사이다의 톡 쏘는 맛의 정체가 바로 이 탄산이다. 탄산이란 물에 녹은 이산화탄소다.

우리 몸의 센서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감지한다. 그래서인지 탄산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물에 녹은 탄산이 입 안에서 터질 때 혀와 입천장은 희열을 느낀다. 샴페인과 맥주에서도 우리는 같은 재미를 느낀다. 그것을 우리는 ‘시원하다’라고 한다. 탄산이 들어 있는 음료는 시원하게 마신다. 그래야 탄산이 물에 더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마신 사이다는 미지근했다. 점심 때까지 기다려서 김밥을 다 먹은 다음에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쏘는 맛이 약했다. 특히 소주병 사이다는 쏘는 맛이 거의 없었다. 아예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사이다 싸온 친구 주변에 모였다. 뜨뜻미지근한 사이다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탄산수 시장이 매년 급격히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탄산수보다는 맹물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술 대신 흔히 사이다를 택하는 것을 보면 사이다에는 탄산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이 뭘까. 혹시 향 때문일까. 우리의 감각은 확고하지 못하다. 식품 전문가 최낙언 박사에 따르면 눈을 감은 사람에게 사이다를 두 번 주고 어느 쪽이 사이다인지 물어보면 둘 다라고 하지 않고 둘 중 하나는 사이다, 하나는 콜라라고 말한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사이다를 많이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소주와 같은 투명한 색깔 때문일 것이다.

후텁지근한 날에는 사이다를 많이 찾게 된다. 탄산이 식도를 자극하여 순간적으로 갈증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이다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다. 탄산음료 한 캔에는 보통 20~30g의 설탕이 들어 있다. 각설탕 한 개가 3g 정도이니 각설탕 10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에 각설탕 열 개를 넣어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사이다는 다들 잘 마신다. 아이들이 사이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설탕 때문이다.

정치가들도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다. 그 발언에 시민들은 시원함을 느낀다. 그 다음에는 더 톡 쏘는 사이다가 필요하다. 매일 더 강한 탄산수와 더 진한 설탕물이 필요한 것이다.

사이다를 많이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사이다나 커피를 마신 후 조금만 있으면 금방 소변이 마렵다. 사이다를 마시면 보충한 수분보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수분이 더 많아진다. 그 결과 혈액의 점성이 높아진다. 사이다를 마시면 당장은 시원한 것 같지만 갈증이 더 심해져서 결국 물을 따로 마셔야 한다. 또 쏟아진 사이다가 마르면 끈적끈적하다. 물로 닦아야 깨끗해진다. 시민들이 사이다 발언을 쏟아놓으면서 시원함을 느낀다고 해서 정치가들마저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더욱더 목마르고, 세상은 더 끈적거릴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발언과 정치가들의 발언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새 시대의 정치가는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는 리더여서는 안 된다. 시민의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주는 팔로어여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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