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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설거지와 '종북' 다루기

입력
2015.03.0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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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묻은 그릇 설거지통 오염 시키듯

과도한 종북 공세는 사회를 오염시켜

종북 넘어 소모적 이념 갈등 이겨 내야

리퍼트 대사 테러범 김기종이 6일 오후 종로경찰서에서 법원으로 가기위해 나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리퍼트 대사 테러범 김기종이 6일 오후 종로경찰서에서 법원으로 가기위해 나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귀찮은 설거지도 요령을 알고 하면 은근 재미 있다. 설거지가 쉬워지는 제1 원칙은 기름 묻은 그릇과 묻지 않은 그릇의 구분. 설거지 통에 기름 묻은 것 가리지 않고 이 그릇 저 그릇을 함께 쳐 넣으면 모든 그릇들이 다 기름투성이가 된다. 세제를 듬뿍 뿌린 수세미로 그릇 하나 하나를 일일이 닦아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면 기름 묻은 그릇과 안 묻은 그릇을 분리해 처리하면 한결 수월하다. 먼저 기름 안 묻은 그릇은 아크릴 수세미로 닦으면 세제 없이도 쉽게 닦인다. 후라이팬 등 기름이 많이 묻은 종류는 주방 종이타월로 먼저 닦아 낸다. 그런 다음 수세미에 세제를 조금만 묻혀 닦아도 간단하게 설거지가 된다. 당연히 시간과 노력이 훨씬 적게 든다. 세제를 덜 쓰니 환경보호에 도움 되고 헹구는 물을 훨씬 덜 써도 되니 에너지도 절약된다. 아내의 사랑까지 덤으로 받는다.

충격적인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종북몰이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곧 종북 척결, 종북 설거지 선풍으로 이어질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기름이 묻었든 안 묻었든 그릇을 한꺼번에 설거지통에 넣어 온통 기름투성이로 만들 듯이 종북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해 결과적으로 ‘종북 설거지’를 어렵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본래 종북이라는 용어는 진보진영 내부 노선 싸움과정에서 태어난 말로, 민족민주(NL)계열의 북한정권 추종 경향을 지칭했다. 그 흐름은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진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실패가 입증된 시대착오적 노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활개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 내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종북은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 공격에는 종북 용어를 만들어낸 진보세력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1당 야당도 그 자체로, 또는 종북세력의 숙주로서 보수진영의 호된 공격 대상이 되어왔다. 극우보수세력의 리더격인 조갑제씨가 펴낸 종북백과사전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제1야당소속 인사들이 즐비하다.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당일 청와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회의를 열고 범인 김씨의 반미 종북 행적여부 및 활동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방침을 밝혔다. 검찰과 경찰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집중적으로 조사 중이다. 김씨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항의하기 위해 리퍼트 대사를 공격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 외에도 김씨의 종북적 행태는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가 북한과 연계성을 갖고 종북 활동을 해왔는지, 이번 범행에 어떤 세력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은 무엇보다도 이 부분에 역점을 두고 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쳐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맹목적 민족주의 성향도 짙게 배어난다.‘우리민족끼리’와 반미(反美)를 고리로 북한의 주장과 쉽게 맞물리는 행태는 여기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저급한 민족주의도 함께 경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사건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과 함께 우리 사회의 종북문제를 정리해가는 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게 틀림 없다. 범인 김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 사건은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종북 세력의 입지를 한층 좁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종북 몰이가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북 척결, 종북 설거지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북한체제의 변화 방법을 놓고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모두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김정은 체제 동조세력이 많다고 선전해주는 모양이 된다. 종북 문제를 눈 앞의 보수_진보 진영간 싸움의 유리한 소재로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대결 해소와 남북관계 진전 등을 멀리 내다보며 접근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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