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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

입력
2017.03.0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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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해온 상담학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의 심리ㆍ마음ㆍ정신이 주요 관심사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회로부터 영향 받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사회적 접근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다. 개인의 심리적 위기가 자살을 낳지만 이 위기를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 개인이 놓인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개인이냐 사회냐’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결국 개인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을 모두 중시하는 복합적 관점일 것이다. 이 복합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은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의 사회적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경제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개인들이라 해도 그 선택이 다른 것은 심리ㆍ마음ㆍ정신의 차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얼마 전 접한 한 통계 때문이다. 지난달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인구 4%인 3억 2,2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에서 내 시선을 특히 끈 것은 그 규모가 10년 전인 2005년보다 18.4% 증가했다는 점이다. 대체 10년 동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2008년부터 시작된 지구적 경제 위기다. 경제적 어려움은 많은 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이 고단함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증가시킨다. 무기력, 불면, 식욕감퇴, 피로감, 의미상실, 그리고 자살 등이 우울증의 증상 및 결과들인데, 이러한 경향이 지난 10여 년간 지구적으로 강화돼온 셈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왔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2008년 금융 위기까지 겪은 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심리적 흐름은 우울과 분노다. 먹고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진 사회 현실에 대해 개인들이 갖게 된 일차적 감정 상태가 다름 아닌 우울과 분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울에 빠지게 하고, 이런 현실에 대해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인과의 과정이다. 최근 ‘자살공화국’이나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러한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만들어낸 거친 표현들이다.

우울증이든 분노유발이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상처받은 개인들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억압됐던 상처나 절망감에 대해서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소 안정이 된 다음엔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이 자기 대면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해야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사회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제도를 일궈가지 않으면,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이들에게 무기력과 상처를 안겨주는 사회라면 이 역시 체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개인의 변화 없이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가기는 어렵다. 동시에 사회의 변화 없이 새로운 개인이 탄생하기도 어렵다. 우울과 분노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적 처방과 사회적 해법을 결합한 복합적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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