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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KTX 출퇴근… 의원님들, 반짝 이벤트 아니겠죠?

입력
2016.05.3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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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기 위개 줄을 선 김한정(오른쪽 두 번째) 더민주 의원. 김한정 의원 페이스북
지하철을 타기 위개 줄을 선 김한정(오른쪽 두 번째) 더민주 의원. 김한정 의원 페이스북

20대 국회 개원 첫날이던 30일 오전 많은 초선 국회의원들이 첫 출근길에서 느낀 저마다의 소회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대중 교통을 이용해 멀리서 출근한 초선들이었을 겁니다. 이들은 마치 신입사원의 첫 출근 날 아침처럼 설레는 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줬는데요.

경기 남양주(을)가 지역구인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예 ‘의정보고’라는 제목으로 2시간 넘게 걸린 출근길을 중계했습니다. “오전 6시20분에 집을 나서 (남양주) 진접에서 잠실까지 가는 직행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9호선으로 갈아타 의원회관 631호에 도착하니 시계는 8시 50분. 출근에 2시간 반 정도 걸렸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국회의원 모습은 운전 기사가 따로 있는 검정색 대형 세단의 뒷자리에서 앉아 있는 것을 감안하면 김 의원의 ‘고생 스토리’는 신선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도 같은 글에서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수는 없다”고 밝혔듯 이런 모습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역민을 대표해서 국회에서 일을 하는데, 길에서 하루 4시간 이상을 쓴다면 효율성 문제도 제기될 겁니다. ‘새 마음 새 출발’의 기분으로 하는 첫날 출근이었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조승래 더민주 의원이 30일 지하철로 첫 출근하고 있다. 조승래 의원 페이스북
조승래 더민주 의원이 30일 지하철로 첫 출근하고 있다. 조승래 의원 페이스북

충남 논산ㆍ계룡ㆍ금산이 지역구인 김종민 더민주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출근길 소회를 적었습니다. 논산에 거주하는 그가 공주역으로 이동해서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다시 택시로 여의도 국회로 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는 “한번 해보니 출퇴근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며 앞으로도 논산 자택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할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대전 유성갑이 지역구인 조승래 의원도 이날 KTX를 이용해 2시간 정도 걸려 의원회관에 닿았다고 합니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의원 중에서도 2시간 넘게 걸리는 의원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충남 천안갑이 지역구인 박찬우 새누리당 의원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도 영등포역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린다”며 “앞으로도 이렇게 출퇴근 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특히 박 의원은 지역구 내에서도 천안역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한 신부동으로 최근 이사까지 마쳤습니다. 이 정도면 그 다짐을 믿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공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김종민 더민주 의원. 김종민 의원 페이스북
공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김종민 더민주 의원. 김종민 의원 페이스북

사실 일반 직장인이 출퇴근에 하루 3,4시간씩 쓴다면 차라리 회사 근처에 방을 하나 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초선 의원들은 ‘출장급’ 출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4년 뒤 있을 선거에서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다지고 관리하는 일을 떼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남의 한 재선 의원은 “지역구에서 출퇴근 하는 것만큼 효과 좋은 선거운동이 없다”며 부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대전~전남 목포ㆍ여수를 잇는 호남선 KTX가 개통이 되면서 충북 오송, 충남 공주 등도 KTX가 정차가 가능해지면서 KTX를 이용한 출퇴근 의원들이 늘게 된 셈입니다.

각종 행사의 축사 등 의원들에게 지역 활동은 중요합니다. 4선의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초선의원들을 위한 특강에서 금요일에 지역구에 가서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는 뜻의 ‘금귀월래(金歸月來)’를 꼭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으로는 드물게 호남에서 3선에 성공한 이정현 의원의 비결도 바로 금귀월래를 통한 지역 밀착이 첫손에 꼽힙니다. 금요일마다 내려가 주말 내내 지역구를 휘젓고 다니며 경로당, 마을회관 등에서 지역 주민들과 동침까지 한 뒤 월요일 국회로 출근하는 그의 에피소드는 유명합니다.

충청권 초선들이 출장급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역시 충청의 지역구를 둔 선배 의원들의 솔선수범 때문입니다. 3선의 이명수(충남 아산) 새누리당 의원, 4선의 양승조(충남 천안병) 더민주 의원 등은 초선 때부터 지금까지 지역구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고 있는 대표적 의원들입니다. 충청 지역의 한 의원은 “3,4선 선배들이 오래 전부터 지역구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만약 서울에 터를 잡고 출퇴근을 한다면 지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밤 11시 반 막차를 놓치면 집까지 총알 택시를 타야 하고 보통 위험한 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박수현 더민주 전 의원은 매일 공주에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오가는 고속버스로 출퇴근을 했고, 버스에서 만난 지역구 주민들과 나눈 대화나 고민 상담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출퇴근을 원칙으로 하되,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묵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몸 하나 뉘일 만한 작은 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소심하게 가져 보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에도 한 선배 의원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좋은 팁’을 줍니다. 그는 “간이 수면실을 갖춘 사우나 한 군데 뚫어 놓고 8,000원으로 1박을 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의원들의 이런 넘치는 의욕 때문에 보좌진들은 매우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19대에서 충청 지역 지역구 의원을 보좌했던 한 비서관은 “의원이 서울에 따로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 의원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국정감사 때나 지역구에 가기 힘든 날 주무시다 보면 보좌진도 눈치가 보여 쉽게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책상에 앉아 졸다가 하룻밤 보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부 의원들은 자괴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시의원, 도의원이 아닌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를 챙기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딱한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한 보좌관은 “모시는 의원이 하루 3번 지역구와 여의도를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하는 일과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엄연한 다르지만 그 차이를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지역에 소홀했다간 ‘뽑아줬더니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출근을 하든 첫 출근 때, 집 나서며 가졌던 그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만큼은 앞으로도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박진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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