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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통령만 문제일까

입력
2015.02.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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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내내 반복돼 온 대통령의 실패

‘대통령 만인(萬因)주의’ 문화도 한몫

국민도 정치문화 개선 책임공유 필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벌써 한 달 전인데도 도무지 생경하다. IS의 고토 겐지 참수 후 일본인들 반응 얘기다. 응당 울부짖으며 정부를 원망했어야 할 어머니가 “나라에 폐를 끼쳤다”고 했고, 부질없이 화만 내는 듯 보였던 아베 총리는 ‘애썼다’‘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로 지지도가 올랐다.

11년 전 상사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됐을 때 우리 정부는 호된 질타를 당했다. 당연해 보였다. 3년 뒤엔 아프간 탈레반에게 납치된 교회신도 대부분을 잘 구해내고도 “국민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고소까지 당했다. 이땐 좀 심하다 싶긴 했다.

이 극단의 대비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쉽게들 말하듯 문화 차이만으로 뭉뚱그릴만한 건 아니었다. 분명 양 국민 일반의 정치적 인식 차이가 있을 터였다.

이달 내내 박근혜 정부 2년 결산이 모든 미디어와 일상공간을 채웠다. 말이 평가지, 진영을 불문한 독한 비난 일색이었다. 특히 감정 배설구인 인터넷 공간은 극에 달한 한풀이와 조롱의 마당이 됐고, 퇴진을 요구하는 유인물들이 거리 곳곳에 뿌려졌다.

정작 비극은 기시감(旣視感)의 무한 반복이다. 가까이는 노무현, MB 10년 내리 그랬고 더 거슬러 YS, DJ 때도 그랬다. “투표한 손가락 잘라 영도 다리에 던져라” 따위의 자조들을 떠올리면(당대 평가의 제약이 있던 군사정권들은 논외).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고도 우린 늘 불행한 삶을 산 셈이었다.

넷 모두가 끝내 실패한 대통령이 됐고, 지금 다섯 번째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기막히지 않은가. 그 긴 세월 한번의 예외 없이 용케도 절대함량미달의 대통령들만을 골라 뽑아왔다는 사실이.

둘 중 하나다. 우리국민이 온통 어리석든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원천적 요인이 있든지. 적수공권으로 단기간에 이만한 나라를 만든 능력을 보면 당연 후자일 것이다.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아주 좁히면 정치 현실과 인식 사이의 인지부조화가 원인으로 보인다.

트루먼이 대통령 퇴임 전 마지막으로 백악관 집무실을 둘러보며 장군 출신의 후임 아이젠하워를 떠올리며 했다는 독백이 있다. “이것저것 지시하겠지만 되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걸. 불쌍한 친구, 군대와 다르다는 걸 알면 엄청 실망할거야.”(김병준 저서 중) 70년 전, 대통령 권한이 막강했던 시대로 평가 받는 그때 미국에서다.

실제로 현대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기저기 분산된 힘, 공직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독자적 운영구조 등이 당장 저항기제로 작용한다. 미디어,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망은 더 조밀해졌고, 이해충돌이 복잡다기해지면서 국민의 다만 절반이나마 만족시킬 정책도 쉽지 않다. 앞서 일본인들의 반응은 현안들의 복잡성과 난해성, 총리의 제한적 역할을 당연시하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린 다르다. 정부는 무한능력과 책임을 갖고 있고(마땅히 가져야 하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당연히 모든 못마땅한 일들의 궁극 원인과 책임은 대통령으로 귀결된다. 그게 혹 불편할 자기 책임을 희석시키는 심리적 회피책도 된다. ‘대통령 만인(萬因)주의’라 할만한 한국적 정치인식이다.

이래선 어떤 대통령도 성공하기 어렵다. 아니, 현실과 인식의 워낙 큰 간극으로 대통령직에 접근하기도 전에 만신창이 되기 일쑤다. 안철수, 반기문 등 오히려 검증 안 된 인물들에게 자주 대통령감으로 열광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현 대통령의 실정을 변호할 뜻은 추호도 없으므로. 반세기 내리 이어온 대통령들의 실패에 우리의 문제 또한 없는지, 이쯤에서 솔직하게 한번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정치기능의 제한성과 현실문제의 복잡성을 얼마간 이해하고, 대통령에만 모든 해답을 구하는 과도한 기대를 조금 낮추며, 개개인이 책임공유의 인식을 키우는 일 등이 정치개혁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다. 이게 숙의(熟議)민주주의의 바탕이기도 하다.

‘국민은 딱 제 수준의 정부를 갖는다’는 오랜 명제가 옳다면, 대통령들만 문제인 건 분명 아니다.

주필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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