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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준 없는 김영란법…기업들은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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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준 없는 김영란법…기업들은 우왕좌왕

입력
2016.08.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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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ㆍ선물은 기준이라도 있지만

비용 산정 힘든 편의 제공 ‘논란’

법무법인ㆍ권익위 등 문의해도

답변 달라 오히려 혼란만 가중

A기업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38) 차장은 오는 10월 결혼식을 올리는 국회의원 보좌관 박모(35)씨의 축의금과 관련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를 회사가 계약한 법무법인에 문의했다. 박 보좌관은 김 차장의 업무와 직무 관련성이 있지만 대학 과 후배로 절친한 사이다. 처음엔 법무법인에서 “안 된다”고 해석했다. 회사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축의금을 전달할 경우 ‘경조사비 쪼개기’에 해당돼 한도액(10만원)을 초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차장은 학창 시절부터 알던 후배라 개인 돈으로 축의금을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법무법인 쪽에선 “그 정도라면 상식 선에서 가능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박 보좌관 쪽에서 A기업에서 들어온 축의금이 10만원이 넘었다며 신고할 경우가 문제로 거론됐다. 법무법인에선 “이럴 경우 김 차장은 개인적인 친분과 축의금이 개인 돈이란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게 위법인 지는 판례를 봐야 한다”고 답했다.

9월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법을 준수하기 위해 법 내용과 허용 범위 등에 대한 내부 교육 등을 진행해도 판단 기준이 분명하지 않아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고 심지어 사내 법무팀, 외부 법무법인, 권익위원회 등에 문의해도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B기업 관계자는 “법무법인에 애매한 상황을 물어보면 법에 걸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구체적인 것은 판례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명확한 한도가 제시된 식사비용(3만원), 선물비용(5만원) 등은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고 하더라도 비용을 산정하기 힘든 편의 제공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업들이 취재진에게 제공하는 기자실 운영도 해석이 극과 극이다. “매체를 한정하지 않고 기자 누구나 출입할 수 있게 하면 운영할 수 있다”는 쪽과 “출입 가능 대상을 기자로 한정하는 것 자체가 특혜 제공이어서 기자실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맞선다. 항공업계에 쏟아지는 ‘좌석 민원’도 좌석 승급이 아닌 같은 등급 안에서의 좌석 이동까지 ‘부정 청탁’에 해당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업계에서는 유권해석이나 판례가 없는 만큼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C기업 관계자는 “3만원 미만 식사 자리를 열심히 알아보고는 있지만 저녁 식사엔 이 기준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10월부터 저녁 약속은 아예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D그룹의 보험계열사는 VIP 고객에게 마케팅 차원에서 제공하던 그룹 주최 각종 문화후원행사의 초대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은 티켓 가격이 20만원 이상인데 고객 중에 혹시 공무원이나 교사, 기자가 있을까 걱정”이라며 “법무팀에 문의하니 ‘당분간 오해 살 일은 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온 상태”라고 전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 역시 “증권사도 고객 상대 마케팅이 필수인데, 만날 때마다 고객에게 본인 또는 부인이 공무원, 교수, 언론인인지 물어 보고 시작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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