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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근본적이지 않으면 대책이 아니다

입력
2017.04.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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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한 명 있다. 그는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로 어떠한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몰라주거나 오해하거나 방해한다. 결국 온갖 역경을 맞닥뜨리지만 어렵게 이겨내고 이윽고 목적한 바를 이루고 만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인가? 그렇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본 이야기 구조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세계에는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매일 같이 소비하고 살지만 실은 아무도 정말로 감동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영화관의 어둠을 벗어나 밝은 진짜 세계로 돌아오면 삶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래서인지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어느새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사람들처럼 되어버렸다. 현실의 문제에 맞서 멋지게 싸워 극복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되나. 에휴, 우리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관성이 지배하고 안주는 정당화된다. 문제를 약간 인식하는 경우에도 행동은 이상주의로 치부해버린다. 재난 영화 속 상황과 다름없는 현실에 엄연히 놓여있으면서도 주인공 같은 사람은 없고, 악역이나 방관자로서의 조연 역할을 자처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지금이 무슨 재난 상황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예 오감을 닫고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거나 눈앞에 있는 것도 없다고 부정하는 파렴치한이다.

지금의 미세먼지 문제 정도면 거의 재난이 아닌가? 우리가 매초마다 들이쉬는 공기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도? 생명의 가장 기본인 호흡을 제대로 하는 못하는 이 황당한 상황을 그저 현실의 여러 문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는 이 사회의 분위기는 대체 무엇인가? 숨쉬기가 힘들어진 지경에 이르러도 차량 2부제 따위의 거의 당연한 조치조차 ‘이르면 내년에’ 확대시킨다? 이쯤 되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아무런 인식도 의지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만이 아니다. 온갖 시위와 집회에 부지런하던 국민도, 누구에게나 직접 적용되는 문제인 공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두들 환경을 말한다지만 실은 경제로 시작해 경제로 끝난다. 에너지 분야가 타격을 받진 않을지. 자동차 업계는 어떡하고. 관광버스 공회전은. 화력발전소 닫기 전에는 숯불구이 갖고 뭐라 하면 안 되지. 그게 아니면 데이터 뒤에 숨기 바쁘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분석이 나올 때까지 우리 업종은 꼼짝도 안 하겠다는 식이다. 분석이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반응은 ‘왜 나만 갖고 그래’로 일관한다.

문제를 대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기존의 방향은 유지한 채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본적으로 접근법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공기와 호흡의 문제는 너무도 당연히, 당연히 후자의 태도로 대해야 할 사안이다. 어디 나쁜 공장 하나만 잡아 오염원만 제거하면 되는 그런 전근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는 펑펑 쓰면서 약간의 나은 옵션으로 좀 대체만 하면 되는 상황도 아니다. 공기청정기 좀 보급하고, 실외수업 금지한다 해도 공기는 조금도 개선되지는 않는다. 기후변화처럼,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 자체가 낳은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이다. 또 기후변화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떠밀어 아무도 먼저 희생하지 않으려 해서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구도이다. 좀 더 엄격한 환경기준이나 경유 값 인상과 같은 ‘수정주의’가 아니라, 도시에서 자동차를 완전히 없앤 스페인의 도시 폰테베드라 같은 사례에서 적극적으로 배워와 우리 삶터의 판을 새로 짜는 근본주의적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걷기가 주가 되고 자가용이 부가 되는 그런 종류의 변화는 잔머리 정책 몇 개로는 불가능하다. 이 참에 제대로 된 생태적 문명을 향해 방향을 트는 것 외엔 그 어떤 옵션도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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