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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처음으로 고개 숙인 서울대

입력
2016.09.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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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가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청문회에 대한 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가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청문회에 대한 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자 200여명을 포함해 수천명의 피해자를 낳은 옥시 레킷벤키저(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교수들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이 학교 수의과 조모(57ㆍ구속) 교수가 금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유행성을 은폐하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서울대 측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접 사과한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대 교수들의 사과는 28일 오후 교수협의회 주최로 교내 관정도서관에서 열린‘교수의 연구윤리와 연구자로서의 책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교훈’ 이라는 주제의 세미나 자리에서 이뤄졌습니다.

조흥식 교수협의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사회적 책무와 도덕성을 갖춰야 할 저희 서울대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은 같은 서울대 교수로서 큰 충격이며 그 참담함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인사말을 대신했습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신희영 연구부총장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사망한 환자를 떠올리며 “서울대가 그동안 어떤 방법이든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늦어졌다”며 한동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서울대에서 이런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엄정한 연구윤리를 확립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해보는 자리였습니다. 김옥주 의과대 교수는 10년 전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과 이번 가습기 살균제 연구 조작 사건을 비교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은 기업이익을 위한 맞춤형 연구라는 점에서 황우석 사건과의 차이점을 찾았습니다. 기업으로부터 억대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다 보니 교수들이 기업 요청에 따른 연구를 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죠. 김 교수는 연구자와 기업 간 재정적인 이해상충을 관리하기 위해 이해상충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을 건의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가장 많이 낸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CEO)가 21일 영국 본사를 방문한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레킷벤키저 제공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가장 많이 낸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CEO)가 21일 영국 본사를 방문한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레킷벤키저 제공

오정미 산학협력단 정책부단장 역시 기업 연구와 같은 민간과제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가칭 ‘민간과제사전검증단’을 신설해 연구계획과 연구비 등에 대한 사항을 심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번 사례처럼 민간과제를 수행하면서 지원기관 의도에 맞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부적절한 자료를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기업에 유리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내외 전문가들로 검증단을 꾸리고 심의를 통과한 연구과제도 추후 결과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연구자들의 책임의식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학내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윤리 위반에 대해서는 별도 징계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박정훈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구윤리위반은 징계사유로 상당히 중한 책임이 있다”며 “일반적인 징계와 달리 연구윤리위반 징계절차에는 특수한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대는 “연구윤리 강화를 위한 방법을 다양한 측면에서 모색하고 있다”고 수차례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연구자와 기업체 스스로가 윤리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비극은 언제 재연될지 모릅니다.

29일은 조교수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리는 날입니다. 연구결과를 고의로 조작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한 연구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투철한 연구윤리 의식으로 무장하겠다는 이날 서울대의 다짐이 공언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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