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K대 한의예과에 합격한 손모(20)군은 입학사정관제도 덕을 톡톡히 봤다. 손군은 고교 시절 봉사상을 두 차례나 받았고,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한 외부 표창도 6개나 됐다. 학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평가해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그는 전년도에도 이런 스펙을 활용해 서울 S대 자연과학계열에 합격했다. 하지만 손군이 대학에 제출한 수상내역은 어머니와 교사들이 짜고 조작하거나 허위로 작성한 ‘가짜 스펙’이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손군의 대학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필요한 경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각종 대회에서 부정을 저지른 혐의(업무방해)로 서울 K고 교사 권모(55), 홍모(46)씨와 어머니 이모(4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의 혐의는 지난 6월 내신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J여고 교사 민모(57)씨의 여죄를 캐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아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한 어머니 이씨의 열의는 대단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9년 서울 J여고에 다니던 딸의 입시상담을 하며 친분을 쌓은 교사 민씨에게 아들의 입시 관리도 부탁했다. 이에 민씨는 2010년 10월 한 민간단체가 주관한 한글날 기념 백일장 대회에 손군을 응시하게 한 뒤 자신이 미리 작성한 시 4편을 제출해 금상을 받게 해줬다. 그 해 11월 열린 주요 20개국(G20) 기후변화 대책 발표 대회에는 손군이 다니던 학교 교사들도 동원됐다. 민씨가 만든 자료를 어머니 이씨를 통해 건네 받은 K고 교사 권씨는 전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손군의 학교 선배 김모군을 시켜 대신 발표하게 했다. 이듬해 6월 개최된 기후변화 관련 토론대회에서도 권씨와 같은 학교 교사 홍씨의 지시를 받은 서모군이 대신 나가 수상을 했다.
봉사 실적도 대부분 조작됐다. 민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H병원 관계자에게 부탁해 121시간의 봉사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게 했다. 2010년엔 손군이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신고해 경찰 표창을 받았는데, 지갑의 주인은 공교롭게도 민씨의 어머니였다.
이런 식으로 스펙 조작을 해준 대가로 민씨는 어머니 이씨로부터 2,500만원을 받아 챙겼다. K고 교사 권씨와 홍씨는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일단은 업무방해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됐다.
대학의 검증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손군은 2010년 1월 노르웨이 등 북유럽 체험학습을 다녀온 사실을 입시 자료로 활용했지만 출입국 기록 자체가 없었고, 이 기간은 국내에서의 봉사활동 시기와 정확히 겹쳤다. 경찰 관계자는 “서류만 꼼꼼히 살펴봐도 알 수 있는 허위 자료를 두 대학 모두 전혀 걸러내지 못했다”며 “결국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K대와 교육부에 수사결과와 확인된 문제점을 통보하고 손군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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