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 앞세워 IAEA사찰 주도
오늘 訪日 서훈 국정원장에게
일본인 납치자 문제 강조할 듯
북미 정상회담 국면으로 다급해진 일본이 급변하는 정세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금력을 앞세워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주도할 궁리를 하는 한편, 12일 일본을 방문하는 서훈 국정원장에게 대북 관련 한미일 공조에서 일본의 핵심 관심사인 납치자 문제가 제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교도(共同)통신은 10일 복수의 일본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보인 만큼 일본 정부가 당장 북한의 IAEA 핵사찰 관련 초기 비용인 3억엔(약 30억3,000만원)을 부담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비핵화 논의과정에 일본이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통신은 “한미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데 뒤처진 일본이 비핵화에 공헌하는 자세로 존재감을 발휘하려는 것”이라며 “북핵 포기에 대한 구체행동을 취하도록 압박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2009년 IAEA 감시요원을 추방한 뒤 핵사찰을 받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비용부담 입장은 우라늄 농축공장과 원자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 등이 있는 영변 핵시설을 겨냥한 것이다. 사찰관련 초기 준비비용으로 3억5,000만~4억엔(약 35억4,000~40억5,000만원) 정도가 예상되는데, 일본은 IAEA에 제공한 자금 중에서 이 부분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사찰 규모가 예상보다 확대돼 관련 비용이 늘어날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내에선 북미정상회담 개최 결정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는 일본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전협의 없이 트럼프의 결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서만 양보를 얻어내고 일본을 사정권에 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을 용인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다. 더욱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일 정상간 전화회담 이후 백악관이 일본의 최대 관심사인 납북 일본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안해 하고 있다. 미일 동맹과 북한의 대치구도에서 압박의 수혜물로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로서는 상황이 꼬여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견제도 적극적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한국이 나서기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미국이 다른 방법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것이라는 논리로 한국 역할을 낮춰 해석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12일 방일하는 서 원장에게 강경한 대북 입장 및 요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을 상대로 강력한 외교전을 펼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이익을 관철해 낸다는 방침이다. 당장 16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이 워싱턴으로 급파돼 북한 핵 시설 불능화까지 이르는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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