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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칼럼] 다자간 정상회의 헛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6.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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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매번 보호무역조치 동결 등 다짐

WTO 보고서는 무역제한 증가 보여 줘

‘정상선언이행감시기구’ 등 적극외교를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주식시장의 주가 폭락은 미국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를 대공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경제의 불황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세계대공황으로 확대 재생산된 데는 1930년 미국이 제정한 스무트 호올리법에 의거한 대폭적 관세인상과 이에 대응한 다른 나라들의 보호무역주의가 촉발한 무역전쟁의 악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수출확대를 위해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는 이른바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r)’ 정책을 잇따라 채택하면서 세계무역이 축소하고, 생산이 격감하는 사태를 맞았던 것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도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금껏 세계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유가하락 등의 잇따른 후폭풍은 세계경제의 자생적 회복력을 시험대에 올려 놓은 지 오래다. 위기극복을 위한 최상위경제협의기구(premier economic forum)로서 정상회의로 격상된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2008년부터 매번 정상성명을 통해 보호무역조치 동결(standstill)과 불필요한 조치 철폐(rollback)를 주창해 왔다. G20 정상들은 대공황의 주범 중 하나였던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이라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데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이달 초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1차 G20 정상회의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무역의 이익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합의하는 등 진일보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런데, 지난 7월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제15차 세계무역모니터링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정상들의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WTO는 2008년부터 2016년 5월까지 G20 국가들만 보더라도 총 1,583건의 무역제한 조치가 도입되었으며, 그 중에서 25%에 불과한 387건만 철폐되었고, 1,196건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집계결과를 발표하였다. G20 정상들이 지난 8년 동안 매번 약속했던 ‘동결과 철폐’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무역제한 조치 가운데 60% 정도가 반덤핑관세 등 무역구제조치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세계무역규범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세계무역질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 기간에 각각 140여, 110여 건에 달하는 무역구제 조치를 새로 발동했다. 우리의 가장 큰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중국도 이보다는 적지만, 40여 건의 무역구제 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주요 교역상대국의 이런 보호무역주의 확산 분위기는 우리나라 수출에 벌써부터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런 보호주의 조치들이 철강 기계 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상품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통상외교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 경제의 발전 궤적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최근 수출동력의 약화가 장기간에 걸쳐 성장동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을 단호히 막아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이 이런 국제적 노력에 주도권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보았듯,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확산 추세 속에서도 그나마 우리나라는 무역제한 조치나 무역구제 조치의 활용을 가급적 자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조건이다. APEC, ASEM, G20 등 구속력이 약한 각종 정상회의의 합의사항에 대한 각국의 이행을 감시할 수 있는 ‘정상선언 이행감시기구’를 설립하는 등 정상회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계경제의 회복과 한국의 수출확대를 위해 어떻게든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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