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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침묵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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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침묵의 카르텔

입력
2018.04.22 13: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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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너무 빨리 와 버렸다. 하루에도 적잖은 비닐과 플라스틱 컵을 버리면서 언젠가는 이렇게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막연한 걱정은 했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 생태환경부는 올해 말부터 폐차, 폐비닐, 폐PET병 등 16종의 물질을, 내년 말부터는 목재·철강폐기물 등의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일본도 고민이 크다. 중국이 전 세계 재활용폐기물의 50%를 소화해왔기 때문이다. EU는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의 55%를 자국에서 처리하는 원칙을 마련했으며, 영국은 2042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폐기물 값이 싸지자 우리 기업들은 오히려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늘렸다. 수출 길도 막힌 데다 낮은 폐기물 단가는 국내 폐기물업체의 영업기반을 흔들었으며, 이는 대란으로 이어졌다.

재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깨끗한 배출을 권고하지만 세척은 수자원의 낭비와 수질오염을 야기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 사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분리수거만 잘하면 되겠지 하고 위안을 삼았으며, 기업은 이윤창출에 몰두했고, 정치는 표를 의식했다. 그렇게 우리는 침묵의 카르텔의 일원이 되었다. 침묵하지 않는 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미세먼지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까지도 국가적 골칫거리인 미세먼지의 원인이 무엇인지 논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그 원인을 중국으로 돌리면서 문제해결에 수동적이었다. 중국이 미세먼지의 주된 원인인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국이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한 저감을 강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미세먼지의 원인이 중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화력발전소와 노후 경유자동차, 그리고 오염방지시설이 부실한 각종 공장들이 미세먼지의 원인이라는 보고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폐플라스틱 대란과 관련하여 이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열병합발전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 당시 사태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책변화가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기환경의 입장에서 보면 신재생에너지로 과대 포장된 고형폐기물을 원료로 한 발전소는 미세먼지의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침묵의 카르텔을 찾아볼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줄여가는 정책기조 하에 화력발전소 또한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노후화한 자동차의 운행을 제한하거나 도심 진입을 막는다면 불만이 터져나올 것이다. 공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규제를 강화하면 당장 먹고 살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입장은 적극적 미세먼지 방지법안을 마련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국회 차원의 미세먼지특위가 구성되었지만 성과가 없는 이유이다. 시민들은 매일 미세먼지의 고통을 호소하고 국회와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지만, 지금보다 높은 비용을 부담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다시 긴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경제활동은 필연적으로 환경을 침해한다. 그래서 무환경침해가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 헌법 제35조도 환경권을 선언하면서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환경과 경제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곳에서 법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환경의 수준은 시민이 얼마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어떤 환경을 원하는가. 이제는 그 오랜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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