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재용 기자

등록 : 2017.09.13 04:00
수정 : 2017.09.13 09:25

[겨를] ‘아재기자’ 청담동 네일숍 가다

등록 : 2017.09.13 04:00
수정 : 2017.09.13 09:25

40분 지나니 두 손이 반짝반짝

이참에 얼굴 관리도 받아볼까나

매장 손님 20%정도가 남성

3040 아재도…“재방문 경우 많아”

본보 민재용 기자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R 토탈 뷰티 서비스 센터를 방문해 손톱 관리를 받고 있다. 홍인기 기자

마음 한 구석 ‘아재 파탈’의 로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패션 등 자기 꾸미기에 큰 관심이 없는 기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평소 회사에서 멋쟁이로 불리는 자타공인 ‘아재파탈의 선두주자’ B에게 조언을 구했다.

B는 질문을 받고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공부도 자기가 필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처럼, 외모 가꾸기 역시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게 급선무”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기자의 전신을 눈으로 훑더니 “패션부터 머리스타일, 손톱 등 관리해야 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아재 파탈 체험’을 위해 기자는 단 하루 동안 옷을 살지, 머리를 바꿔볼지, 아니면 손톱관리를 받을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40년간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손톱 관리를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B가 다니는 네일숍은 대한민국 패션의 중심지인 서울 청담동에 있었다. 낯선 네일아티스트에게 손을 맡겨야 하는 긴장감 때문에 주저하는 기자를 보고, 기꺼이 반차를 내 네일숍까지 동행해 준 B는 “손톱 관리를 받아보면 사람을 만나는 데 자신감이 생긴다”며 “다음에 네일숍을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손톱관리 후 내 손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라는 궁금증이 교차했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한 R숍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매장은 손톱관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 머리와 메이크업 등 미용관련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법 큰 규모의 뷰티 센터였다. 20, 30대 젊은 여성이 대부분이었으나 3040 젊은 아재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톱관리를 해줄 네일 아티스트 ‘제이미 리’ 씨와 인사를 나눴다. 손톱관리를 난생 처음 받아 본다는 고해성사에 이어 ‘남자 손님들이 정말 많이 오는지’ 취재용 질문을 던졌다.

제이미 씨는 “손님의 20% 정도가 남자 손님들로, 남성 고객들은 한번 서비스를 받아본 후 다시 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와 미리 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지만, 손톱관리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제이미 씨 앞에서 열손가락을 곱게 폈다. 연애할 때 여자친구 손을 잡아 본적은 있지만 낯선 여성 앞에 손가락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라앉았던 긴장감이 다시 올라왔다.

본지 민재용 기자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R숍에서 손톱관리를 받고 있다. 홍인기 기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제이미 씨가 “손톱이 너무 짧다”며 한숨을 내 쉰 것이다. 깨끗한 손톱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는 네일숍 방문 전날 손톱을 최대한 짧게 잘랐다. 혹시 모를 손톱 밑 때를 숨기고 싶었던 마음도 작용했다. 숍에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손톱이 너무 짧으면 관리 받기 힘들다. 손톱을 갈거나 다듬으려면 어느 정도 손톱 길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B는 “때를 밀러 목욕탕에 가기 위해 전날 집에서 목욕한 격”이라고 비웃었다.

실제로 짧은 손톱은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다. 손톱 밑 살이 드러날 정도로 짧게 깎은 탓에 손톱 관리 도중 피가 나기도 했다. 제이미 씨는 익숙한 손길로 소독을 하고 작업을 이어갔지만 관리 받는 내내 짧은 손톱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톱 위에 들어본 적 없는 각종 영양제가 듬뿍 발라지고, 제이미 씨의 손길이 여러 차례 거쳐가자 손톱에선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손톱 하단 부분의 ‘큐티클’이라는 살 찌거기를 제거하고 나니 손톱의 면적도 훨씬 넓어졌다. 손톱 하단의 반달 모양 문양인 ‘조반월’이 원래 이렇게 컸는지 처음 알게 됐다.

B가 종합관리 서비스를 예약했기 때문에 손에도 각종 영양제가 투하됐다. 40~50분의 관리를 받은 기자의 손에선 정말 반짝반짝 윤이 났다. B는 “남자라도 이런 손으로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하면 상대방이 좋은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와진 손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한번의 관리로 손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얼굴 피부도 관리 받으면 지금보다 얼마나 젊어질까. 물론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만 마음속에서 ‘외모 가꾸기’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게 신기했다.

손 관리가 끝나고 발톱 관리가 이어졌다. 양말을 벗을 땐 손을 내밀었을 때 보다 훨씬 쑥스러웠다. 제이미 씨도 “발톱관리까지 받는 남성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고 솔직히 말해 주었다.

발톱 관리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혹시 발 냄새가 풍기지 않을지 걱정됐고, 발톱 관리를 위해 높은 의자에 앉았더니 매장 내 여러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이번에도 짧은 발톱이 문제였다. 전날 손톱뿐 아니라 발톱도 짧게 잘랐던 것이다. 짧은 발톱은 제이미 씨를 애먹였지만 대신 기자의 열 발가락은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이름도 기억 못하는 온갖 영양제에 제이미 씨의 손길이 더해져 발톱은 손톱보다 더 윤이 났다. 그는 “남자치고는 발톱 상태가 나쁘지 않아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각질 제거도 받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여름철 맨발로 샌들을 신고 다닐 때 발톱이 엉망이거나 갈라진 뒤꿈치 등을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하지만 여름도 거의 지나간 데다가 맨발로 샌들을 자주 신지 않아 각질 관리는 다음으로 미뤘다. 무엇보다 매장 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높은 의자에서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톱과 발톱 관리가 끝나자 ‘남자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B의 평소 지론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는 일반 아재들에겐 여전히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이기도 했다. 비용 부담도 적지 않았다. 여자보다 손ㆍ발이 커 영양제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여성보다 5,000원정도 비싼 4만5,000원을 내야 했다. 하지만 예뻐진 손과 발을 보니 다시 관리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B는 “술과 담뱃값을 고려하면 큰 부담이 절대 아니다”라며 “자신을 위한 투자에 그 정도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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