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설하기로 한 과학기술전략회의에 대해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학기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관료 조직을 키워 영향력만 행사하려 하는 것 아니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간담회’에선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 주재의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통해 “핵심 과학기술 정책과 사업, 부처 간 의견대립 사안에 대해 전략을 마련하고 조정 역할을 수행하며 R&D 시스템 혁신을 추진해가겠다”고 밝혔다. 전략회의의 행정 업무를 담당할 사무국은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기술전략본부에 설치된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지난해 R&D의 비효율을 혁신하고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미래부 안에 ‘과학기술전략본부’(이하 전략본부)를 만든 바 있다. 특히 정부는 과학기술정책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도 운영하고 있다. 심의회는 정부와 민간 위원들이 과학기술 관련 주요 계획을 수립하고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조정하며 예산 배분 역할까지 한다. 이 심의회의 사무국도 역시 전략본부에 있다.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가 새로 생기면 전략본부에겐 상위 의사 결정 기구가 둘이나 생기는 셈이다.
더군다나 이들과 별도의 독립 조직으로 운영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도 있다. 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발전 전략과 주요 정책 방향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국내 과학기술 기반이 없어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학계나 민간이 스스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우리 과학기술이 발전했다”며 “여러 개의 컨트롤타워가 과연 필요한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정부의 R&D 정책 결정 구조가 결국 엎치락뒤치락 끝에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략본부의 구조와 기능이 참여정부 당시 과학기술부 안에 뒀던 과학기술혁신본부(이하 혁신본부)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혁신본부를 폐지하고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통합한 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폐지하고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미래부에 넘겼다. 그랬던 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미흡하다며 전략본부에 이어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까지 들고 나왔다. 한 과학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종 조직과 회의를 만들었다 폐지했다 반복하면 과학기술계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최종배 미래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은 “과학기술 흔들기나 옥상옥이 아니라 현 체계를 보완하고 강화하려는 조치”라며 “전략회의가 큰 방향을 제시하고 심의회가 그에 따른 정책들을 심의ㆍ의결하면 예산 배분과 정책 조정 등을 전략본부가 더 힘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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