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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시골 작은 병원의 실험

입력
2018.03.16 13:4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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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 이하 시ㆍ군에 산다고 상상하자. 좋은 점은 자연환경이 쾌적하고 이웃간 친밀감이 강하다. 자신이 텃밭에서 안빈낙도한다. 반면 병원과 학교가 부족하다. 문화와 복지는 열악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 다양한 일자리가 없고 대부분 농업에만 종사한다. 결과적으로 소득이 낮아 농촌 정주가 쉽지 않다. 때문에 농가인구는 1970년 248만 가구에서 2017년에는 106만 가구로 감소했다.

위기감을 느낀 대다수 지자체는 귀농ㆍ귀촌을 표방한다. 인구가 늘면 폐교는 막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와 병원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고민이다.

최근 용인 수지의 한 의원(醫院)이 경북 상주시 은척면으로 이전해 개원했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주 산골에 겁도 없이 내려왔다. 반대로 김천의 한 중견병원은 수원시와 MOU를 체결하고 서수원 진출을 약속했다. 어려운 지방병원의 현실을 본다면 여력이 허락하는 한 수도권으로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돈벌이와 행복에 역행하는 이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려지지 않은 슈바이처인가. 모두가 수도권 진출을 열망하는 시대. 엘도라도를 버리고 찾아온 오지. 주변 10여개 면에 작은 의원 하나 없다.

병원수도 인구에 정비례한다. 사람과 자본 없는 시골에서 환자난, 의료 인력난, 경영난의 삼중고를 겪고 병원 문을 닫는 사례를 보면 슬프도록 아프다. 이곳 상주 은척면에도 2012년 한의원이 개원했다가 딱 1년 만에 폐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도시로 나갔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의사에게 무슨 묘안이 있을까.

한의원이 은척에 개원했다는 소문은 금방 상주시민 전체가 알 정도로 화제였다. 그리고 곶감 포도농사에 관절통, 신경통으로 혹사당하던 할머니들에게는 “침 억수로 잘 놓은 서울 의사”로 소문이 났다. 주변 사람들은 용하다는 서울 원장님을 만나러 몰려 왔다. 한의원이 생기자 인근 사우나, 분식집, 농산물판매장도 덩달아 손님맞이를 해야 했다. 사실 은척면 주변 지역은 보건지소만 있다. 병원에 가려면 함창이나 점촌, 상주시내로 가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면소재지도 활기차졌다. 식당과 노래방도 장사가 잘됐다. 세칭 “오픈 대목”이었다.

귀농귀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관광객 10명보다 귀농귀촌인 1명이 지역 활성화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귀농귀촌인 5명보다는 빵집이나 커피숍 한 곳이 생기면 거주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렇다면 병원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아마 빵집 5개 정도가 병ㆍ의원 한 개와 비슷하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한의원은 겨울 내내 구정까지도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농번기가 찾아오고 할배, 할매들은 다시 농사일에 빠져 분주하다. 지역 노인들은 이상하다. 농사에 몰입하면 아픈 것도 사라지는 모양이다.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가 줄어든다. 몇 개월도 못돼 간호사 한 명을 권고 사직시킨다. 원장은 비로소 속리산이라는 수려한 풍광 속에 가려진 현실을 보기 시작한다.

지난해 발표된 ‘문재인 케어’는 향후 5년 이내 30조원 재원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강조한다. 문 케어가 살려면 시골 작은 의원과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좀 더 필요하다. 그래야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산골마을 의사가 먹고 살 수 있고, 빵집도 생길 수 있다. 귀농해서 몸이 아프면 한의원 가서 침도 맞고, 빵집에서 도넛 한 개 먹어야 사는 게 아닌가.

무채색의 거대도시에서는 관심과 눈길도 없는 산골. 소수의 환자만이 신음하는 한의원이라는 실험실을 차리신 의사 선생님! 당신의 상식 밖의 열정과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지만 걱정됩니다. 지구촌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한다는 대한민국, 어떤 궁리(窮理)를 만들 수 있을까?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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