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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에도 폰 못 놓는 ‘가상화폐 좀비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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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에도 폰 못 놓는 ‘가상화폐 좀비 직장인들’

입력
2018.01.09 15: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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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큰돈 번 성공담 자극에

정보업체에 거액 이용료 지불하고

동료들과 쉴새없이 정보 공유

은행들, 업무시간 투자 금지령

기업은행은 “적발 시 엄중조치”

다른 금융권으로도 확산 가능성

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류효진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류효진 기자

A은행에 근무하는 이모(34)씨는 지난달 가상화폐 거래에 뛰어 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거래소에도 계좌를 텄다. 최근엔 수익률을 높이려고 가상화폐 정보업체에 이용료 100만원을 내고 투자정보까지 받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디바’들이 건네는 정보가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도착하면 근무시간에도 화장실 등으로 이동해 코인을 사들인다. 이씨는 “월급에 맞먹는 돈을 눈 깜짝할 사이에 벌 수 있어 스마트폰으로 시세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고 털어놨다.

B기업에서 일하는 김모(30)씨는 요즘 동기들과 업무 시간 내내 카카오톡(카톡)으로 가상화폐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카톡방엔 코인 개발회사가 트위터 등에 게시하는 정보와 밋업(meet-upㆍ설명회) 일정 등이 수시로 뜬다. 김씨는 “최근 정부 규제로 가상화폐 가격이 조정 중이지만 다 같이 시련의 시기를 이겨 내자는 의미에서 대화창 이름도 ‘희망의방’에서 ‘버팀의방’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 업무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이른바 ‘가상화폐 좀비 직장인’이 급증하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가 유행을 넘어 과열양상으로 치닫자 금융권에선 고객 돈을 관리하는 시중은행들이 가장 먼저 직원들의 가상화폐 투자를 차단하고 나섰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전 영업점에 직원들의 가상화폐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적발 시 엄중 조치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 보냈다. 금융공공기관 중 아예 전 직원의 가상화폐 투자를 전면 차단한 곳은 기업은행이 처음이다. 신한, 우리, 국민은행 등 주요 민간 시중은행들도 최근 업무시간에는 가상화폐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워낙 커 혹시라도 큰 손해를 본 직원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어 업무시간엔 가상화폐 투자를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가상화폐에 빠진 직원들이 워낙 많아 이를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가상화폐 관심은 광풍에 가깝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지난달 한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2만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중 상위 10개 앱의 월간 순 사용자 수(중복 제외)가 180만명에 달했다. 특히 30ㆍ40대가 53.7%로, 절반을 웃돌았다. 앱 이용자의 실행 횟수는 67회로, 증권 앱(15회)의 4배도 넘었다.

가상화폐 투자로 연봉을 훨씬 웃도는 큰 돈을 벌었다는 성공담이 샐러리맨들을 가상화폐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강한 자극제다. 이씨는 “연초 가상화폐로 큰 돈을 번 동기 4명은 회사를 그만뒀다”며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이들처럼 회사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근무하는 정모(35)씨도 “실명제가 실시되고 신규 가입이 가능해지는 20일만 되면 오히려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겠다는 사람들도 적잖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직장인의 가상화폐 거래를 완전히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어느 회사든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지조차 불투명하다 보니 직장인들은 더욱 가상화폐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가격이 폭락할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자금 횡령 같은 문제도 생길 수 있어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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