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홍대새교회 목사(전 삼일교회 목사) 성범죄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청소년 목회자로 알려진 라이즈업 무브먼트 전 대표 이동현 목사의 성범죄 소식이 다시 한국 교회에 좌절을 안기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목회자의 성범죄 사건은 5년간(2010~2014) 성범죄를 저지른 전문직군 가운데 목사 등 성직자 비율이 1위라는 보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꼭꼭 숨겨져 왔던 불편한 진실들을 현재진행형으로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빙산의 일각을 암시하는 건 아닐지 불길함마저 감돈다. 앞으로 교인들이 어떻게 마음 놓고 교회에 다닐 수 있을까.
성서에서 ‘간음’은 분명 ‘죄’로 분류된다. 특히 간음은 십계명 중 7계명에 속하는 범죄에 속하며 이에 대한 처벌은 사형이다. 눈여겨볼 것은 간음은 7계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와 십계명인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에 속하는 다중 중범죄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예수가 ‘심리적 욕망’까지 ‘간음의 범주’에 넣고 있음을 볼 때, 목사의 성범죄는 교회가 간과해선 안 될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곡된 여성관과 은닉 구조
교회는 목사가 절대 권력으로 성(性)을 남용, 악용하기 용이한 구조로 작동한다. 목사는 설교권과 축도권, 치리권, 성례 집행권을 통해 교인들에게 ‘영적 아버지’라는 입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사, 예산, 행정 등 교회 전반의 업무를 결정하는 데도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그 권위에 불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위기다. 성과 권력의 관계를 파헤친 미셀 푸코가 지적한 대로, 목사가 절대 권력을 취하는 이런 교회구조는 마치 ‘욕망의 전차’처럼 질주할 수 밖에 없다.
또 2000년의 교회사에서 승인돼 온 가부장적 성경해석은 여성을 ‘종속된 존재’로 학습시키기도 한다.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성경 해석에만 천착하다 보니, 교회와 교단에서의 성차별은 만연하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어디서 여자 주제에”, “여자가 기저귀차고 어딜 강단에 올라와?” 같은 성차별적인 설교가 최근까지도 ‘성경적 진리’라며 한국교회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회에서 목사가 사적으로 만나자고 전화하거나 성희롱적 발언과 추행을 해도 교인들은 “여자가 건방지다”, “목사님을 음해한다”라는 비난과 조롱이 두려워 ‘노(NO)’라고 말하거나 성범죄를 즉각 폭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이런 구조와 인식 수준 때문이다.
진실규명보다 교회성장?
무엇보다 어렵게 피해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목사의 성범죄를 덮고 감싸주는 이른 바, ‘성범죄 은닉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제자를 성추행한 세계적인 수학자가 파면되고 구속된 것과는 다르게, 대부분 남성 목사들이 주된 결정권을 쥔 교회와 교단들은 성추행을 저지른 목사의 죄를 감싸주고 덮는 일에 담합함으로써 교회를 점점 성범죄의 사각지대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회와 교단이 목사의 성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선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고통의 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목사이니 용서해주자”, “목사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전도가 막힌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온다. 여기서도 감지되듯, 교회성장과 교회체면을 명분으로 유명 목사의 성범죄를 무조건 덮으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목사의 성범죄는 다른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전병욱 목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목사의 성추행이 알려지면 가해 목사는 내용을 부인하거나 가벼운 실수였다고 대응하면서,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러면 목사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교인들까지 가세해 피해자를 ‘꽃뱀’이니 ‘이단’이니 하면서 가해자로 몰아 비난하는 게 교회가 보여온 수순이다. 전 목사에게 성추행 당한 피해자 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떠나거나 우울증에 빠져 고통 받은 이들도 있다. 가히 신적 권위를 갖고 있는 목사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를 협박, 회유하고 이들에게 죄책을 뒤집어 씌우는 이런 무자비가 또 다른 가혹한 피해가 되는 것이다.
또 성추행을 저지른 목사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가는 설교와 축도행위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결과도 가져온다. 피해자는 죄책감, 원망과 공포, 수치심, 우울과 분노, 박탈감과 적개심을 겪는 것은 물론 신앙관, 성경관의 심각한 왜곡으로 큰 영적 혼란까지 겪을 수 있다. 결국 이런 성범죄는 목사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 공동체,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를 더럽히는 ‘악한 누룩’이 되는 셈이다.
피해자 호소에 귀 기울여야
성직자에게 중요한 건 유명세나 권력이 아니라, ‘성(性)적인 거룩함’이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건전하고도 공적인 성 담론을 펼쳐 행복한 가정과 교회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할 당사자다. 그런 만큼 교회와 교단은 이들의 성범죄에 대한 다양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목사 후보생 자질에 대한 사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지하철 ‘몰카’ 사건의 가해자가 신학생, 목사였다는 사실은 범죄자도 쉽게 신학교에 진학해 목사가 될 지 모른다는 우려를 세간에 안겼다. 신학생과 목사 안수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검증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양성평등, 성윤리 등을 필수로 가르쳐야 하며, 정기적인 성윤리 교육도 검토해야 한다.
각 신학교 및 교단 내에 성폭력 특별법 제정 및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성범죄 데이터베이스(data base)를 범교단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한 대안이다. 윤리위에 여성 비율을 높여 교회의 남성권력 카르텔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교회에서도 성윤리와 성폭력 지침에 관한 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교인들에게는 성주체의식 교육과 함께 목사의 성추행과 성폭력, 범죄에 당당히 ‘노(No)' 할 수 있는 인식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요구된다. 무엇보다 교회와 교단에서 피해자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핫라인’, 치유와 회복을 위한 상담소 및 쉼터 등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목사를 힘들게 하면 벌을 받거나, 교인들로부터 왕따를 당할까봐 신고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으로 혼자 삭히면서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게 교회의 비참한 현실이다. 피해자들이 억울함과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고, 고통과 인간단절로부터 치유 받고 회복될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 역사 속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이다. 성서는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건 큰 죄악임을 명시하고 있다. 목사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징계가 이뤄지고, 무엇보다 교회가 피해자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이길 희망한다.
신학자 강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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