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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장벽 없는 유럽의 디지털시장 어려워,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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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장벽 없는 유럽의 디지털시장 어려워, 어려워

입력
2018.02.23 2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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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디지털단일시장(DSM) 만들기 전략

-회원국별로 상이한 정보보호법, 계약법으로 교역 장벽 여전

-디지털 시장 장벽으로 연간 40억~80억유로 추가 비용 발생

-유럽 차원의 단일 규정과 세제 조정 등이 필요

-DSM 완성시 해마다 500억유로 추가 경제성장 가능(집행위 추산)

-난민위기 등으로 여전히 진행형

유럽연합(EU)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묘사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유럽연합(EU)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묘사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3일 영국 런던 중심가의 한 대형호텔.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 고위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페이스북과 구글, 사운드클라우드 등 수십 개 업체에서 정보 보호 관계자들이 모여 하루 종일 세미나를 벌였다. 이들은 90페이지에 가까운 규정을 분석하며 준비상황과 정보를 교환했다. 유럽연합(EU)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일반정보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ㆍGDPR)이 올해 5월25일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가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처럼 당장은 정보기술(IT) 업계와 언론들이 GDPR을 규제로 다루며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사실 GDPR은 단순한 정보보호 규정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국경이 없는 디지털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ㆍDSM)을 만들기 위한 EU의 큰 계획 가운데 일부다.

영국을 포함한 EU는 인구 5억1,000만명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다. 상품ㆍ서비스뿐만 아니라 노동ㆍ자본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통합 과정에서 관세는 점차 인하됐고 철폐됐지만 국경통제나 상이한 기술표준 등 비관세장벽은 1990년대 초반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들은 1992년 12월 31일까지 국경없는 단일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1992년 계획’을 추진했다. 올해로 EU 단일시장 완성계획(1992년 계획)은 25년째를 맞았다. 현재 가스와 전기 등 기간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EU는 단일시장을 형성했다.

그런데 디지털 분야에서는 아직도 단일시장이 요원하다. 일부 국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국 안에서만 인터넷 거래를 허용한다.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했는데 관련 법규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2014년 11월 취임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 위원장은 임기 5년 안에 달성해야 할 우선 정책으로 DSM을 제시했다. 그러나 융커 위원장의 잔여임기가 20개월이 못 되는 현재 DSM의 진전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영국자동차대여업협회(BVRLA)가 지난해 10월 개최한 일반정보보호규정(GDPR) 설명회 장면. 개인정보와 연관된 각종 업계가 올 5월 시행을 앞두고 앞다퉈 GDPR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영국자동차대여업협회(BVRLA)가 지난해 10월 개최한 일반정보보호규정(GDPR) 설명회 장면. 개인정보와 연관된 각종 업계가 올 5월 시행을 앞두고 앞다퉈 GDPR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융커 집행위의 구체적인 DSM 달성 전략은 크게 3가지다. EU 28개 회원국 소비자와 기업들의 디지털 상품ㆍ서비스 접근 개선, 디지털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프라 창출 그리고 디지털 경제의 성장 잠재력 활용이다. 우선 서비스 접근을 개선하려면 회원국마다 서로 다른 저작권법과 부가가치세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원과 세율 조정은 회원국의 고유 권한이기에 집행위가 건드릴 수 없다. 인터넷 업체들이 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게 하는 모든 회원국에서 통용되는 규정을 만드는 게 급선무인데 별반 진전이 없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프라 창출은 그런대로 일부 성과가 있었다. 네트워크 및 정보시스템 보호 지침(The Directive on Security of Network and Information SystemsㆍNIS Directive)은 2016년 8월에 합의됐다. NIS의 핵심 운영업체를 지정해 이들의 책무를 대폭 강화했다. 전자상거래와 전자결제 및 클라우딩 업체 등의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고 사이버공격을 당하면 즉시 감독당국과 소비자에게 보고하게 하고 시정 의무를 규정했다. 또 소비자들의 보상권 규정도 강화했다. EU 회원국들은 올해 5월까지 이 지침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NIS 지침과 함께 EU 정보시장 양대 중요 규정으로 지목되는 것이 앞서 언급한 GDPR이다. 기존에 있던 데이터보호법을 20년 만에 대폭 수정했다. 특징은 국적을 불문하고 EU 안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EU 회원국 시민들의 정보를 보유한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는 점. 한국 기업들도 유럽 시장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정보 당사자의 정보 이용 동의권을 강화했고, ‘잊혀질 권리’도 명시했다. 정보 처리자는 정보 당사자에게 정보 이용 현황과 정보 침해 사실을 통보하고 정보침해 여부에 대한 정기적인 영향 평가 등을 실시할 의무를 지닌다. 이를 위반한 정보 처리자는 최대 전세계 연 매출액의 4% 또는 2,000만유로라는 거액의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세계 인구의 30%에 가까운 22억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페이스북은 현재 이를 위반하고 있다. 스페인의 한 IT업체는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명시적 동의가 없이 피부색이나 인종, 정치 성향, 종교, 성적 취향에 따라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광고 영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경제의 성장 잠재력 확충은 위의 두 개가 제대로 실행되면 가능해진다. 집행위는 DSM이 회원국별로 분절됐기 때문에 해마다 40억~80억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이를 제거하여 디지털 단일시장을 만들면 경제 성장률도 더 높아지고 추가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집행위는 연간 500억유로 규모의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이처럼 집행위는 DSM을 우선순위에 놓고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2015년 난민위기와 2016년 6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등 갑작스런 위기로 DSM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EU는 정보보호 규정만큼은 확실히 선도하고 있다. 최근 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정보보호를 우선하기로 결정하여 이를 소홀히 하는 국가와 FTA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유럽의회는 한-EU FTA 이행에 관한 보고서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보장한 권리를 위반하고 노조 지도자를 구속하고 단체 협상에 정부가 개입한 것이 FTA 협정을 위반했다며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우리는 EU와 FTA 수정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인권 위반 문제와 함께 DSM을 위한 규정 대응 요구도 나올 것이 분명하다. EU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DSM을 제대로 알고 적합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ㆍ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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