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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개ㆍ 돼지 모욕죄

입력
2016.07.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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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 두 마리의 돼지가 권력자로 그려진다. 엘리트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동물들을 각성시켜 혁명에 성공한 뒤 지배세력으로 군림한다. 돼지 대표들은 인간 대표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술을 같이 마시는 등 사람과 대등한 존재로 묘사된다. ‘삼국사기’‘동국세시기’등 고문헌에서 돼지는 신성한 동물로 대우 받는다. 지금도 고사상에는 돼지머리가 올려지고, 돼지꿈은 재물과 복의 상징이다. 죽어서는 높은 영양가와 풍성한 살코기를 제공하는 유용한 동물이다.

▦ 개는 역사상 가장 먼저 가축화된 짐승 중 하나다. 수렵과 유목을 주로 하던 인류에게 개는 사람보다 더 소중한 친구이자 조수였다. 유능한 양치기와 사냥꾼이었고, 주인이 자는 동안에도 위험을 감지해 알려주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전북 임실 오수의 의견(義犬)과 전남 진도의 ‘돌아온 백구’이야기는 개의 영민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려동물 100만 마리 시대에 접어든 요즘 강아지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 교육부 고위 간부가 “민중은 개ㆍ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막말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평소 지니고 있던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과 국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전근대적 사고가 드러난 셈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계층 격차와 신분 대물림을 교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언인지라 충격이 더욱 크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는 ‘때론 사람이 개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문구의 현판을 서재에 걸어놨다고 한다. 개와 돼지가 사람에게 기여한 공로에 비교하면 교육부 간부가 이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조직 보스인 김영철은 오른팔처럼 아끼던‘넘버2’이병헌이 왜 자신을 죽이려 했냐고 묻자 명대사를 날린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교육부 간부의 발언은 열심히 사는 많은 국민에게 심한 모욕감을 안겨줬다. 모욕은 사람에 대해 공공연하게 경멸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이르며, 형법은 ‘사람을 공연히 모욕한 자’를 모욕죄로 처벌하도록 돼있다. 2010년 개그맨 노정렬씨는 당시 새누리당 조전혁 의원을 개와 소 등 짐승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검찰에 의해 모욕죄로 기소됐다. 이번엔 개ㆍ 돼지들을 대신해 검찰이 교육부 간부를 곧바로 기소했으면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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