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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기자의 출사표’ 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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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기자의 출사표’ 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

입력
2017.06.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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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4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검찰 호송차에 오르기 전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영호 기자
2009년 3월 24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검찰 호송차에 오르기 전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영호 기자

“이제 삼천일 넘게 지켜온 복직의 꿈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YTN 사장 공모에 입후보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YTN 사장 공모에 출사표를 던졌다. 노 기자는 11일 오후 9시쯤 YTN 노동조합에 사장 공모에 입후보 하겠단 뜻을 담은 글을 전했다. 그는 사장직에 탈락해도 기자로 복직하지 않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도전에 임하겠다 밝혔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지 3,171일만의 결심이다.

노 전 기자의 결심에 많은 사람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대체 YTN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의 결정을 응원하는 것일까. 지난 9년간의 여정을 살펴본다.

잘 나가던 언론인에서 해직기자로

2008년 10월 9일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에서 열린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구본홍 전 YTN사장(왼쪽)이 대표로 증인선서를 한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그의 앞에 증인으로 출석한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뱃지를 달고 앉아있다. 조영호 기자
2008년 10월 9일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에서 열린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구본홍 전 YTN사장(왼쪽)이 대표로 증인선서를 한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그의 앞에 증인으로 출석한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뱃지를 달고 앉아있다. 조영호 기자

공채 2기로 1994년 YTN에 입사한 노종면 기자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그가 총괄한 ‘돌발영상’은 권력자에 대한 통렬한 풍자 덕에 YTN의 간판 프로로 등극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순탄할 줄만 알았던 그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자신의 방송 특보였던 구본홍 전 YTN 사장을 차기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YTN 노조와 간부 사이의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2008년 7월 14일 구씨를 YTN 사장으로 선출하기 위해 열린 임시주주총회가 YTN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날 총회에서 노종면 당시 앵커는 “일부 선배들(회사 간부)이 대주주한테서 권리행사를 위임 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일 뒤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전 사장 임명안은 날치기로 통과됐다.

2008년 9월 16일 생방송 중인 '뉴스의 현장' 도중 YTN 노동조합 집행부가 앵커 뒤 배경화면에서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9월 16일 생방송 중인 '뉴스의 현장' 도중 YTN 노동조합 집행부가 앵커 뒤 배경화면에서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달 뒤인 2008년 8월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9대 위원장으로 노씨가 선출됐다. 이때부터 그는 낙하산 사장과의 싸움을 진두지휘 했다. 노조원들과 손잡고 구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했으며 노조원 전원이‘낙하산 반대 뱃지’와 '공정방송 사수 리본’을 가슴에 달고 리포트를 했다. 9월 16일엔 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YTN 접수기도 낙하산은 물러가라’는 퇴진 요구 팻말 내세운 ‘생방송 시위’를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구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출근을 막는 노조원들을 겨냥해 “사장실 안에 도장이 있어서 사장실에서 직인을 찍어야 월급이 나온다”는 ‘월급 궤변’으로 노조에 비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했다. 사내 게시판에 회사의 비전으로 ‘보도와 경영의 분리’를 표명한 바로 다음날 보도국 부장∙팀장 인사를 단행하는 이중적 행보를 보여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은 고소, 인사조치로 응징했다.

“도도한 언론 민주화 역사는 구본홍씨와 그에 부역한 인사들을 죄인으로 기록할 것입니다.”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구 사장이 고소한 조합원 11명이 (고소 당한 12명 중 한 명은 당시 해외 출장 중)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해 첫 조사를 받던 2008년 9월 25일 노 위원장은 구 사장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낙하산 사장의 전횡에 대한 반감은 전염병처럼 퍼져 190여명의 사원이 ‘구본홍 반대 릴레이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회사는 그러나 노조의 투쟁을 학살로 일축했다. 2008년 10월 6일 사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권석재·노종면∙우장균·정유신·조승호·현덕수 등 기자 6명을 해임 결정했다. 사장의 인사 이동 명령을 거부한 직원 33명에겐 정직, 감봉 등의 징계가 떨어졌다. 해고 통보는 퇴근시간 직전에 이뤄졌다.

암담했던 앞길 밝혀준 건 ‘광장의 촛불’

지난해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 참여한 YTN 해직기자들. 왼쪽부터 현덕수, 조승호, 노종면 기자. YTN노동조합 페이스북
지난해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 참여한 YTN 해직기자들. 왼쪽부터 현덕수, 조승호, 노종면 기자. YTN노동조합 페이스북

해직 후부터 복직과의 밀고 당기기가 시작됐다. 노 기자는 2009년 3월 22일 긴급체포∙구속 됐지만 같은 해 11월 1심 재판부가 6명 전원에 대한 해고가 무효하다고 판결해 복직에 초록불이 켜지는 듯 했다. 그러나 2011년 4월 2심, 2014년 11월 상고심에서 법원은 권석재∙우장균∙정유신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나 노종면∙조승호∙현덕수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하며 일터 복귀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공정 방송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언론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미디어 협동조합 국민TV에서 앵커로 활동했으며 2016년엔 대안 뉴스 플랫폼 ‘일파만파’를 설립했다. 2017년 1월에 개봉한 김진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선 해직 언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몸소 보여줬다.

지난한 세월을 인내한 그에게 촛불을 통한 정권 교체는 언론 정상화라는 숙원을 풀 기회다. 다음은 노 기자의 출사표의 일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시대가 열렸습니다. YTN 사장 공모 역시 촛불이 요구한 결과입니다. 저의 결심이 촛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지 쉼 없이 자문하며 공모 절차에 임하겠습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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