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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정 교과서 대화 편집 방식 시급히 바꿔야 한다

입력
2017.0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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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는 시문 창작에서 옛사람을 답습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는데, 나는 이 ‘답습’이란 말을 떠올리면 교과서의 대화 편집 방식이 생각난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폐해가 뚜렷한 것이 현재 국정 교과서의 대화 편집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의 편집 방식을 보면, 큰따옴표로 구별되는 대화는 본문보다 한 글자 간격씩 들여 넣기를 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을 비롯한 글들을 보면 대화는 별도의 단락으로 별행으로 처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때 본문의 왼쪽 끝 위치보다 한 글자만큼 안쪽으로 들여 넣어 편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집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금방 드러난다.

첫째, 큰따옴표로 이미 대화임을 구별해 주고 있으므로 들여 넣기를 해서 또다시 구별해 줄 이유가 없다. 둘째, 대화만이 별도의 단락으로 되어 있지 않고 대화와 지문이 이어지거나 섞여 있는 경우 어떻게 편집할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교과서에서는 들여 넣기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하든 혼란을 주게 된다. 즉 아무런 이점이 없고 교과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편집 방식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정 교과서가 이러한 대화 편집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검인정 교과서도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교과서에서 처음에 왜 이런 잘못된 편집 방식을 채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를 바로잡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나는 이미 10여 년 전에 충분한 실례를 들어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교과서 대화 편집 방식 바꿔야 한다’, ‘우리 교육’ 2003년 4월호). 이후 이 글을 관계기관의 게시판에도 올렸고, 국립국어원 직원을 만났을 때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아무 반응이 없이 이런 잘못된 편집을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김수영 시인은 산문 ‘히프레스 문학론’(1964)에서 대화를 한결같이 별행으로 쓰는 작가들의 ‘후진성’을 지적해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 ‘네’ ‘아니요’ ‘흥’ ‘개새끼’ 같은 것까지도 … 무조건 행을 바꾼다”라면서 우리 문학이 ‘세계의 조류’를 등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50여 년 전 일이다. 대화를 들여 넣기 하는 편집 방식은 이처럼 대화는 무조건 별행으로 써야 한다는 의식의 후진성과도 상통하는 듯싶다.

이 같은 대화 편집 방식은 출판 현실과도 한참 동떨어진 교과서만의 방식이다. 국정교과서 초등 ‘국어 5-2 나’에 실린 동화 ‘가마솥’과 ‘국어 활동 6-2 가’에 실린 동화 ‘그 고래, 번개’를 예로 들면, 본래 이 작품이 실린 책에서는 대화를 들여 넣는 편집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교과서를 개념 없이 따라 하는 일부 어린이책을 제외하고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화를 들여 넣는 편집 방식을 채택하는 책은 없었다.

아무런 합리성이 없고, 교육받는 학생에게 혼란을 주고, 출판 편집자에게는 불필요한 작업을 발생시키는 이런 잘못된 대화 편집 방식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당장 올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부터 바꾸거나 그럴 수 없다면 늦어도 내년에 사용하는 교과서부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교육부는 곧바로 국정 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 개발진에 이를 개선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가’ ‘나’로 분권된 교과서의 경우 쪽번호를 연번호로 매기고 있는데 장점보다 불편함이 클 것 같다. ‘국어 5-2 나’를 보면 1쪽이 아니라 163쪽부터 시작되고 있다. 분권을 했으면 쪽번호도 새로 매기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책에 대한 일반의 상식이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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