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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선 잠잠한 미투... 정화 시스템ㆍ무관용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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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선 잠잠한 미투... 정화 시스템ㆍ무관용 효과

입력
2018.03.15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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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터지면 기업 이미지 끝장”

꾸준한 예방 교육도 한몫

“인사상 불이익 받을까 참아”

일부선 ‘쉬쉬’ 상반된 의견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말 대기업 직원들이 소통하는 익명 애플리케이션 게시판엔 ‘미투(#Me Too) 이후 A기업이 대단하다고 느낀 까닭’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기업 종사자인 글쓴이는 ‘(A기업은) 적어도 5년 전쯤부터 직원들의 성(性)인식 교육에 크게 공을 들였다. 인사 팀에선 주기적으로 사원들을 모아놓고 교육했고, 작은 성 관련 사고에도 (관용 없이) 퇴사시키는 등 본보기를 보였다’고 적었다. 또 ‘(그래서인지) 미투 이후 내부 동요도 거의 없었고, 회사 생활 자체가 단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도 했다.

며칠 뒤 같은 게시판에 다른 기업 종사자가 글을 올렸다. 구체적인 폭로 내용은 없었지만 ‘B그룹 내 만연한 성추행들을 조사해야 한다’는 제목이 달렸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동조하는 B그룹 계열사 직원부터, ‘우리회사도 마찬가지’라는 금융권 종사자 댓글이 뒤따랐다. 곳곳서 성추행이 만연한데, 회사에선 쉬쉬하고 있단 주장이다.

법조계와 문화계, 정치권 등 사회 전반을 휩쓴 미투 열풍이 대기업에선 사뭇 잠잠한 모습이다. 이를 놓고 업계에선 성 추문이 한 번만 터져도 기업 이미지가 크게 추락하는 특성상 일찌감치 강도 높은 사내 정화 시스템을 갖춘 덕이라는 분위기다. 반면 강한 위계질서와 폐쇄적인 조직 특성 탓에 피해자 폭로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기업문화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업계서 미투 폭로가 잠잠한 이유로 ▦철저한 사내 제보 시스템 ▦성추문에 대한 관용 없는 징계 ▦꾸준한 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꼽는다. 특히 기업들은 사내 성 관련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이 커질 경우, 개인 사건이 전체 조직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실제 1월 말 C그룹은 신입사원 연수에서 성추문을 일으킨 신입사원 두 명의 입사를 취소했다. 특정 단어를 그림으로 설명해 답을 하는 게임을 하던 중, 참가자 수십 명이 보는 대형 스크린에 남녀 특정 신체 부위를 그려 노출했단 이유에서다. 당시 “과도한 징계”란 회사 안팎 여론도 있었으나, 회사는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수 년 전부터 성 관련 문제가 사실로 밝혀지면 무관용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해 강력한 징계를 내려왔다”고 강조했다. “전 사원이 1년에 한 차례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는데다, 관련 제보 또한 엄격한 보안 절차 속에 철저히 조사돼 온 지 오래”라고 했다. 대형 전자기업 D사에 다니는 박모(28)씨는 “성폭행으로 퇴사 당한 간부, 성추행 의혹에 휘말렸다 2년째 진급을 하지 못한 직원을 보면서 구성원 전체가 ‘오해 살 일조차 만들지 말자’는 인식을 갖고 있다”라며 “회식을 1차에서 마치는 문화도 정착됐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반대 경험을 털어놓는 이들도 많다. 대기업에 9년간 다니다가 지난해 말 퇴사했다는 문모(33)씨는 “임원이 엉덩이를 치면서 친분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불만을 표시했다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거란 우려에 계속 참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희롱 피해 사실을 폭로했을 때 ‘회사 시끄럽게 만드는 애’라는 낙인과, 회사 이미지에 손실을 끼친다는 부담, 회사 차원의 법적 대응이 두려워 참았다”는 이도 있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자체 고발 및 징계 시스템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직업을 걸어야 신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안고 사는 실정”이라면서 “피해자가 집단 안팎에서 2차, 3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까지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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