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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연 동호회 유감

입력
2018.02.23 14:4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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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함께 좋아하는 모임이다. 어떤 공통의 관심사로 사람들이 모여 그 대상에 대한 호감과 열정을 공유한다는 것,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핏 보면 세상에 이보다 더 선하고 이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말과 뜻이 통하는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세상에서 취미가 같은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는 건 인생의 동료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그 취미가 평범한 것이 아닐수록 더욱 그렇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아닐수록 ‘함께 좋아하기’는 더욱 절실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생 동식물이다. 야생 조류, 어류, 양서류, 그리고 야생화. 알고 보면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모임이 수두룩하고 회원도 넘쳐 나지만, 회원들이 속한 각자의 가정과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런 분야는 마이너 중 마이너이다. 모르긴 몰라도, 자기의 고유한 사회적 부분집합 안에서는 모두 특이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동식물 찾아 다니는 별난 녀석! 남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이들은 그래서 자기네끼리 기를 싸매고 찾아 모이는 것이다.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들의 조직력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나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 인근의 이화여대 교정을 지나다가 삼각대에 망원경을 길가에 설치한 몇 명을 발견하였다. 대체 무엇을 보나 궁금해 물어보자 보기 드문 홍여새가 지금 저 나무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생물은 다 좋아하는 필자라 이게 볼거리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쌍안경을 통해 보니 정녕 아름다운 자태의 홍여새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교내 야생조류 동아리 회원들의 눈썰미 덕분에 진귀한 구경을 한 셈이었다.

흡족한 마음을 안고 돌아간 며칠 후, 비슷한 곳을 지나다가 나무 아래 몰려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바주카포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카메라 렌즈를 든 아저씨들이었다. 물어보니 역시 그 홍여새를 보러 찾아왔다는 이야기. 드문 새의 출현 소식은 삽시간에 커뮤니티에 퍼져 여기저기 내로라하는 탐조가들이 여기까지 몰려든 것이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난 걸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이랬다.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우리끼리는 쫙 퍼지니까요. 여기 이분들 다 유명하신 분들이에요.”

지난번과는 달리 돌아서는 나의 마음은 사뭇 씁쓸했다. 아, 결국은 마니아 또는 덕후가 섭렵하고 말았구나. 새가 떴다 하면 연락망을 가동하여 중장비를 들고 달려들어 만족스런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 ‘새가 좋아서’라지만, 실은 내 카메라, 내 사진실력, 내 눈썰미, 내 출사경험, 내가 본 새 목록이 훨씬 중요하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너무 나쁘게 보는 것 아니냐고? 그 소중한 새들의 삶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는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출현의 포착에만 열을 올리는 모순을 그러면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홍여새가 나타난 그 교정은 물론, 서울 곳곳의 나무가 툭하면 목 또는 허리춤에서 베어지고, 새의 서식에 매우 중요한 하층식생은 지저분하다며 없애는 이 상황 말이다. 새를 보는 것을 진정 좋아한다면, 너무도 당연히 그 새들의 안위와 안녕에 대한 배려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위 동호인들은 그저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에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다. 재작년 처음으로 무분별한 조류 촬영에 대한 처벌이 내려졌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새’보다 ‘새를 본 나’가 더 중요한 탐조 문화는 그 대상에 대한 근본적 배신행위이다.

좋아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된 온갖 만행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동식물의 촬영에 열을 올리는 그 수많은 동호인들이 자연보호에도 똑같은 열과 성을 보인다면 이곳이 전혀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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